삼수령 센터(예수원)- 이 땅에 생수의 강물을 흐르게 하라!

대외 활동 +61

[조선일보][Why] '통일 땔감' 모으는 신부님

2016.12.24

 

 

[전현석 기자의 觸(촉)] 태백 산골 대안학교 '생명의 강' 만든 벤 토레이

3代째 한국 사랑
장로교 목사 할아버지 6·25 이후 의수 만들고
성공회 신부 아버지는 산 속에 처음 수도원 지어

통일을 믿습니다
우린 아직 준비가 덜 돼 있죠 하나의 마음이 될 준비요…
탈북 학생들이 그러더군요 북한에 대해 안 캐물어 고맙다고

 

올해 66세인 벤 토레이 신부는 직접 손도끼를 들고 땔감 장작을 팬다. 1965년 아버지와 함께 예수원을 지을 때도

그랬다. 토레이 신부는 “인적 없는 산골짜기에 벽돌과 나무 하나씩 쌓아 올려 이곳을 지은 것처럼 남북한이 차근차근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태백=김지호 기자

 

서울에서 강원 태백까지 기차로 4시간, 태백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을 달려 태백시 하사미동에 도착했다. 주변에 농가 서너 채만 보이는 인적 드문 이곳에 단층짜리 학교가 덩그러니 서 있다. 운동장까지 합쳐서 축구장 절반만 하다. '생명의 강' 대안학교다. 원래 한 초등학교 분교였으나 학생 수가 적어지자 문을 닫았었다. 2009년 푸른 눈의 한 신부가 "이곳에서 통일 세대를 키우겠다"고 나타났고 그 이듬해 개교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갖췄다. 벤 토레이(66·한국명 대영복) 신부였다. 미국 신부가 학교까지 지어가며 남북통일을 대비한다는 것이 의아했다. 21일 만난 그에게 "남북통일을 믿습니까?"라고 물었다. 토레이 신부는 우리말로 또박또박 "믿습니다"고 했다. "통일은 언제든 분명히 올 겁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진정한 통일은 어렵습니다. 사람의 통일, 마음의 통일이 그것입니다. 남북한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건 기적일 겁니다. 그 기적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남북통일 믿는 푸른 눈 신부

―왜 마음의 통일이 힘든가요.

"서로 협력할 준비가 안 돼 있으니까요. 한국 사회가 그렇고, 한국 교육이 그렇습니다. 지금 한국 교육은 경쟁에만 집중해요. 자신과 다른 다양한 사람들과 협력하고 서로 사랑하는 법을 몰라요. 생명의 강 학교에선 통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치진 못해요. 아직 돈이 없어요. 하지만 통일의 가장 기초적인 것은 가르쳐요. 그게 뭐냐 하면 서로 협력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요.

"이번에 우리 고등학교 졸업생 7명 중 1명에게 자폐증이 있어요. 처음에 입학했을 때는 대화하는 법을 모르고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법도 몰랐어요. 하지만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자폐 학생과 함께 어울리고 공부했어요. 그 학생이 사회성이 많아지고 좋아졌는데 나머지 학생들도 성장했어요. 앞으로 이 학생들은 사회 나가서 다른 사람과도 잘 협력해서 일할 겁니다. 최근에 탈북 학생 8명이 우리 학교에 방문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학교 교사가 너무 기뻐했어요. 이유를 물었더니 '다른 학교 학생들처럼 처음부터 북한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따뜻하게 환영해줘서'라고 해요."

―학생들에게 일을 시키죠.

"일주일에 한 번이요. 목장 가서 청소하고, 농가 일을 도와요. 노동이 아주 중요해요. 육체적으로 건강해지고요. 노동을 통해서 협력하는 걸 배워요. 위험한 일을 할 때는 다른 사람 다치지 않을지 살펴야 해요. 책임감도 키워요. '이 나무를 톱으로 잘랐다'면서 자신감도 생겨요. 교실에선 이런 걸 얻을 수 없지요."

생명의 강 학교에선 다른 학교 학생들을 위해 여름에 4박5일 일정으로 노동학교도 운영한다. 학생들은 이 기간 동안 휴대전화를 학교에 맡겨야 한다. "첫째 날엔 아주 힘들어요. 학생들이 적응 못 해요. 이틀째도 어려워요. 그런데 사흘 되면 학생들이 휴대전화 생각을 안 해요. 친구들하고 일하면서 노는 게 재밌어져요. 휴대전화 있으면 환경에 집중 못 해요. 고개 숙여 휴대전화만 봤다가 고개 들어 하늘을 보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고, 옆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에 집중해요. 마지막 날 다시 휴대전화 나눠주면 다시 카카오톡 보내느라 바쁘지만요(웃음). 그 며칠 동안 정신의 족쇄에서 벗어나 자유를 느낀 걸로 된 거예요."

 

벤 토레이(오른쪽) 신부와 그의 아버지 대천덕 신부가 1978년 예수원에서 크리스마스 미사를 드리고 있다. /벤 토레이

 

 

3代에 걸친 한국 인연

생명의 강 학교에서 20분쯤 산속으로 들어가면 개신교 수도 공동체 '예수원'이 나온다. 벤 신부의 아버지인 고(故) 루벤 아처 토레이 성공회 신부가 1965년 세웠다. '대천덕(戴天德) 신부'라는 한국명으로 더 유명한 그는 예수원에서 지내며 "돈을 사랑하면 남을 사랑할 수 없다"는 청빈과 나눔으로 평생을 보내 '살아 있는 성자(聖者)'로 불렸다.

스위스 농가 건물을 연상시키는 예수원 본관 건물 안에 토레이 신부 숙소가 있었다. 그는 직접 도끼로 장작을 패 보였다. "제 벽난로에 들어갈 거니까 제가 직접 합니다. 열다섯 살 예수원 지을 때부터 도끼질을 했어요."

토레이 신부는 일곱 살 때인 1957년 아버지 대천덕 신부와 어머니 제인 토레이(한국명 현재인)씨를 따라 한국에 왔다. 할아버지·할머니는 당시 대전에서 의수·의족을 만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장로교 목사였어요. 중국에서 선교사로 일해서 중국어를 잘했는데, 2차 세계대전 때 미군 통역 장교로 복무하다 교통사고로 오른팔을 잃으셨어요. 6·25전쟁 후 한국에서 팔·다리 잃은 사람이 많아서 의수·의족과 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했죠. 아버지는 그런 할아버지 뜻에 따라 한국에 왔고요."

―당시 한국은 미국보다 많이 낙후됐었죠. 불편하진 않았나요.

"전혀요. 저는 모험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딱 한 가지 불편한 점 있었어요.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와서 머리하고 얼굴을 막 만졌어요. 파란 눈, 금발머리 외국 아이를 보기 힘들었으니까요."

―어머니 자서전(산골짜기 가족 스케치)을 보면 부자지간이 각별했다더군요.

“아버지하고 대화를 많이 했어요. 제가 10대 초반에 아버지는 서울 오류동 성미카엘신학원(성공회대의 전신) 원장이었어요. 그때 신학원에 도둑이 많이 들어서 돌아가면서 밤에 경비를 섰는데, 아버지하고 저하고 금요일마다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했어요. 그것도 아주 큰 모험이었어요. 경비 돌면서 얘기하고 더 궁금한 건 백과사전을 찾아봤어요. 차(茶) 기르는 것부터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얘기했어요. 아들한테 제일 좋은 선생님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지은 수도원

대천덕 신부는 1964년 예수원 설립 장소를 찾아 전국을 누비다 이곳까지 왔다. 지금도 휴대전화가 잘 안 터지는 지역이지만, 그때는 서울에서 기차 타고 8시간, 버스로 갈아 타고 1시간30분을 달려야 올 수 있었던 곳이었다. 길도 잘 닦여 있지 않아 홍수가 나거나 폭설이 내리면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기차역에서 3시간을 걸어와야 했다. 토레이 신부는 서울에서 외국인 학교에 다니다 15세 때였던 1965년 아버지를 따라 이곳에 왔고, 4년 동안 예수원 건물을 함께 지었다. 첫 건물이 완공되기까지 7개월 동안은 군용 텐트에서 10명의 노동자·농부들과 지냈다. 열다섯 살의 토레이는 이들과 함께 땅을 고르고 산에 길을 내고 장작을 패고 음식을 만들었다. 겨울에는 개울가 얼음을 깨서 목욕과 빨래를 했다.

―고생 많이 했겠어요.

“아니요. 저는 즐거웠어요. 매순간이 도전이고 어드벤처였어요. 예수원에 말 한 마리가 있었어요. 마차에 물건 싣고 오다가 말이 너무 힘들어해서 여기까지 못 오고 마차 밑에서 잔 적 있어요. 서울 갔을 때 친구들한테 자랑했어요.”

 

 

벤 토레이 신부가 ‘생명의 강’ 대안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벤 토레이

 

 

―정말 추웠을 텐데요. 전기도 수도도 없었고요.

“옷 많이 입으면 됐어요. 큰 문제 되지 않았어요. 제가 보이스카우트였는데, 물 쓰려고 아버지하고 펌프를 설치했어요. 전기 없었지만 광부들 쓰는 카바이트등과 양초를 직접 만들었어요.”

―1960년대만 해도 이 지역에 북한 무장공비가 나타나서 주민들을 죽이기도 했어요. 겁나지 않았나요.

“그래서 한 달 동안 한국군 100명이 여기 머물기도 했지만 겁은 안 났어요.”

―영양실조로 쓰러진 적도 있었다면서요.

“처음에 음식이 없었으니까요. 국수와 수제비를 많이 먹었어요. 저는 제 인생을 살아나갈 힘을 이곳에서 얻었어요.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뚱뚱하고 힘이 없었는데, 4년 후엔 몸과 마음이 튼튼해졌어요.”

북한 생각하면 흐르는 눈물

토레이 신부는 대학 진학을 위해 1969년 미국으로 돌아갔다. 명문으로 꼽히는 뉴욕의 사라 로렌스 컬리지를 나왔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돼 미국 에트나보험회사, 앤더슨 컨설팅회사 등에서 일했다. 방학이나 휴가 때면 부모가 있는 한국을 찾았다.

부친 대천덕 신부는 2002년 8월 뇌출혈로 한국에서 별세했다. 예수원 근처에 49만5000㎡(약 15만평) 목장 땅을 정부로부터 빌려 청소년 수련단지를 만들겠다는 ‘삼수령’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삼수령은 지역에 있는 언덕 중 하나로 서쪽으로 흐르는 한강, 남쪽으로 가는 낙동강, 동쪽으로 향하는 오십천(五十川)이 만나는 삼수점에서 유래했다. 사람들은 대천덕 신부의 장남인 토레이 신부가 아버지 뒤를 이어 예수원과 삼수령 사업을 맡을 것이라 생각했다. 토레이 신부는 “처음에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주변에서 아버지 뒤를 이어야 한다고 압박이 심했겠군요.

“네. 많은 분이 제 손을 잡으면서 그래 달라고 했습니다.”

―왜 그때는 그걸 거절했습니까.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미국 한 대안학교 학장으로 있었어요. 또 아내와 함께 미혼모를 위한 쉼터를 운영했어요. 그 일도 중요했어요.”

―그런데도 한국에 온 계기가 있었겠군요.

“아버지 장례식을 마치고 미국 대안학교로 돌아갔어요. 전쟁 중인 코트디부아르에서 선교 활동을 하신 목사님 얘기를 학생들과 듣는데, 갑자기 북한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는 거예요. 라디오를 듣다가도 또 울었어요. 사나흘 동안 이런 일이 반복됐어요. 아버지께서 북한과 통일에 관심이 많으셨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저는 별로였는데. 이건 나의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내한테 얘기했더니 ‘그런 말 할 줄 알았다’면서 승낙했어요.” 그의 아내 리즈(62)씨는 현재 생명의 강 학교 교장으로 일하고 있다.

 

1966년 가방을 메고 예수원 앞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토레이 신부. 어린아이는 여동생 옌시이며 뒤따르는 사람은 “

누군지 모르겠다”고 했다(왼쪽). 예수원에서 찍은 가족사진. 아버지 대천덕 신부와 여동생 옌시, 토레이 신부와

아들 루벤을 안은 부인 리즈, 여동생 드버니아, 어머니 제인. /벤 토레이

 

토레이 신부는 2005년 한국으로 와서 ‘네 번째 강 계획’을 실천하고 있다. 서쪽 한강, 남쪽 낙동강, 동쪽 오십천에 이어 북쪽으로 백두대간을 따라 통일의 기운을 흘려보내겠다는 것이다. 현재 내년 여름 준공을 목표로 목장 한쪽에 생명의 강 학교와 교사·학생을 위한 기숙사 건물을 짓고 있다. 앞으로 통일 수련단지도 만들 계획이다.

토레이 신부는 “물론 돈 때문에 힘들지만, 돈이 필요하다고 기도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통일을 위해서 한국 교회가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교회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야 남북한 사람들도 하나가 될 겁니다. 물론 이게 하늘에서 금 떨어지는 것보다 어려울 수도 있지요(웃음).”

예수원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파티

2012년 4월엔 어머니가 뇌종양으로 별세했다. 현재 토레이 가문에서 예수원을 지키는 사람은 토레이 신부와 그 여동생 옌시(53)씨다. 옌시씨는 대천덕 신부 별세 직후 미국서 이곳으로 건너왔다. 현재 예수원에는 3개월에서 1년 동안 또는 이곳을 집으로 여기고 사는 60여명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전직 신부에서 무직자 등 다양한 이력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산다.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2박3일 일정으로 예약한 사람들이 찾아와서 머물다 간다. 휴대전화를 맡긴 뒤 하루 세 번 이상 침묵하고, 함께 일하고 밥 먹고, 자신이 아닌 이웃을 위해 기도한다. 이렇게 예수원을 찾는 사람이 매년 5000~1만명이다. 숙박비는 받지 않는다. 십자가 목걸이 등을 만들어 판 수익으로 운영하고 나머지는 전액 후원금에 의존하고 있다.

―돈 문제로 힘들겠어요.

“재정 자립도는 절반 정도입니다. 저희는 모금 활동을 하지 않아요. 필요한 게 있다고 사람에게 알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보내줍니다. 믿음 재정이라고 합니다.”

―그럼 언제 힘이 드나요.

“열여섯 살 때 폭력배 2명이 예수원에 들어온 적 있는데 칼과 돌을 들고 싸운 적이 있어요. 지금은 일정 시간 동안 수련 과정을 거친 뒤 식구들끼리 투표해서 새 식구를 맞이하니까 그런 사람 없어요. 하지만 식구들 관계가 여전히 어려워요.”

―사람들의 재산, 학력, 직업 차이 같은 것 때문일까요.

“아니요. 그냥 같이 산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입니다. 이웃이 아니라 식구니까요. 이웃이 싫어지면 안 보면 됩니다. 한 지붕 아래 사는 식구는 그렇게 못 해요. 서로 사이가 나빠져서 살다 나가는 식구도 있고, 다시 들어오는 식구도 있어요. 문제 생기고 싸울 때도 있어요. 우리는 대단하지 않고 그렇게 거룩하지 않아요.”

토레이 신부는 잠시 말을 거두었다. “그래도 이곳에선 항상 기적이 일어나요. 식구들끼리 이런 문제가 생겨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아요. 또 다른 하나는 1965년 세운 예수원이 51년째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겁니다.”

예수원에는 설립 때부터 이어져 오는 크리스마스 전통이 있다. 양말에 선물을 가득 담아 이날 예수원에 있는 식구와 손님 모두에게 주는 것이다. 많을 때는 150여개를 준비한 적도 있다고 한다. 토레이 신부 여동생 옌시씨는 “원래 어머니 혼자 그 일을 하셨는데, 돌아가시고 나서는 예수원 식구들이 함께 준비한다”고 했다. 양말에 들어가는 선물은 땅콩, 오징어, 사탕, 초콜릿, 장갑, 목도리, 모자, 귀마개 등이다. 토레이 신부는 “크리스마스의 기쁨은 우리 식구들이 모두 모여 양말 한 켤레씩 챙기는 겁니다. 그거면 크리스마스 선물로 충분합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23/2016122301677.html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23/2016122301677.html

 

Comment +0

[국민일보][이 땅의 희망지기-벤 토레이 신부] “교회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 보여줘야 통일 후 하나 될 수 있어”

 

2013-01-25

 

 

 

 

“남북통일을 위해 가장 중요한 준비가 뭔지 아세요? 한국교회가 하나 되는 겁니다.”

의외였다. 수도원의 은자(隱者)라고 생각했는데 대뜸 남북통일을 끄집어냈다.

개신교 초교파 영성훈련원인 예수원 대표 벤 토레이(63) 신부는 지난 21일 기자를 만나자마자 통일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가 펼치는 통일에 관한 지론이 남달랐다. 한국교회의 분열 극복이 남북통일의 전제조건이라고 했다. 한국교회를 말할 때는 강원도 태백의 산골짜기 수도원에서 온 성직자가 아닌 세상을 향해 일갈하는 선지자의 모습이었다. 인터뷰 내내 그는 한국교회부터 하나가 돼야 북한선교가 가능할 뿐 아니라 통일한국이 성경적 세계관 안에서 새롭게 갱신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미나 참석차 서울에 올라온 그를 서울 충신동 선교사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다.

“지금처럼 분열된 한국교회로는 북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줄 수 없어요. 오히려 우리 죄만 보여주겠지요. 교회가 먼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남북한 사람들도 하나 될 수 있습니다.”

4대째 선교사 집안에서 태어난 토레이 신부는 2005년 아내와 함께 예수원에 정착했다. 당시 그의 나이 55세. 미국에서 IT 전문가와 교육자의 삶을 살던 그가 다소 늦은 나이에 태백에 온 것은 다름 아닌 ‘남북통일’ ‘북한선교’를 위해서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10여년간 통일 운동을 했다.

푸른 눈에 넉넉한 풍채를 지닌 그는 한국에서 다소 생소한 미국 동방교회 소속 신부(神父)다. 아버지인 대천덕(루빈 아처 토레이) 성공회 신부와는 다른 교파에 몸담은 셈이다. 교회 초교파 연합의 원리를 가족이 몸소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아버지는 성공회 신부, 할아버지는 장로교 목사, 증조할아버지는 회중교 목사예요. 몇 년 전 토레이 가문 모임이 있었는데, 53명의 자손 대부분이 교회에서 사역을 하더군요. 놀라운 건 그 가운데 침례교부터 천주교까지 다양하게 있었다는 거지요. 하지만 우리는 다투지 않아요. 교파가 어떻든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손이니까요.”

뜻 모를 울음

1950년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예수원을 건립한 고 대천덕 신부와 고 현재인(제인 그레이 토레이) 사모를 따라 8세 때 한국으로 처음 왔다. 그때부터 미국의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10대 시절을 아버지가 세운 예수원에서 공동체 청년들과 함께 살았다. 하지만 한국에 정착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그는 69년 대학 진학을 위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72년 사라 로렌스 대학을 졸업한 후 79년부터 에트나 생명보험회사와 앤더슨컨설팅 회사에서 각각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시스템 개발자로 일했다. 94년부터는 코네티컷주에 미션스쿨인 킹스스쿨을 설립해 이사장과 학장을 지내기도 했다. 78년 1년간 예수원에서 살며 수련자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그때도 한국에서 계속 살 생각은 없었다.

그러던 그가 하나님의 소명을 알게 된 것은 52세이던 2002년. 대 신부의 소천으로 장례식장을 지키던 그에게 부모님의 오랜 벗이었던 한 집사님이 찾아왔다. 손님이 많아 현 사모를 찾을 수 없으니 대신 말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창세기 2장을 묵상하면서 느꼈던 소감을 어머니께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는 흐르는 강이 4개 있는데 삼수령엔 강이 3개밖에 없다’고요. 이곳이 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발원지라 ‘삼수령(三水嶺)’이라 불리거든요. 이 말을 듣자마자 저는 집사님의 의중을 이해했어요. ‘예수원에 네 번째 강이 필요하다는 것이로구나.’ 그 강은 북쪽을 향하는 생명수를 뜻하는 것으로 북한과 통일에 관련된 사역을 말씀하시는 것이었고요.”

예전부터 그는 아버지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세대를 육성하기 위해 수련원 설립을 놓고 20여년간 기도했던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현 사모에게 전화로 ‘네 번째 강’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곧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토레이 신부에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평범한 일상에서 북한의 어려운 상황이 자주 겹쳐 보이면서 눈물을 쏟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학장으로 있는 학교 채플시간에 설교를 들어도, 운전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다가도 북한이 생각나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런 일이 일주일 동안 여러 번 반복됐다.

“그 당시 북한을 생각하며 얼마나 자주 울었던지 제 자신이 우울증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북한 수용소나 어려운 경제상황 등이 자주 생각나고 우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아버지 장례식 때 들었던 ‘네 번째 강’이 비로소 기억나더군요. 이때부터 하나님의 뜻을 놓고 아내와 주변 사람들과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원에서 남북한 통일을 위해 일하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제가 하겠다고요.”

“북한은 곧 개방되지만 한국교회는…”

토레이 신부가 예수원에 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도로 들은 성령의 음성 때문이었다. 북한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52년간 북한과 무관한 삶을 살아온 자신이 왜 남북통일 준비를 해야 하는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조언을 떠올렸다. ‘나(부모)를 따라가지 말라. 오직 성령님만 따라가라. 그의 부르심대로 해라.’ 성령의 인도를 구하며 기도에 전념하던 그의 마음속에 음성이 들렸다. 두 마디였다. ‘북한은 곧 개방된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준비가 안 돼 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곧(soon)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북한이 개방된다니. 놀라웠지만 한편으론 정말 그렇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독일 베를린 장벽과 소련이 붕괴된 걸 보면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입니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거였지요. 60년간 다른 길을 걸었지만 한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쓰니까 준비 없이도 문제될 게 없다는 분들이 남한뿐 아니라 북한에도 많았어요. 속으로 많이 놀랐습니다. 러시아가 개방됐을 때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갔지만 얼마 후에 다시 나온 일을 반면교사 삼아야 해요. 준비하지 않으면 한국교회도 같은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 개방의 때를 준비하겠다는 결심을 세운 토레이 신부는 2003년 예수원 공동체에 합류할 뜻을 밝혔다. 예수원은 그를 대 신부의 후임자로 여겨 삼수령센터 본부장으로 임명했다. 당시 미국에서 청소년 수련원과 기독 대안학교인 생명의강 학교 설립에 관여했던 그는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 2005년 한국으로 다시 옮겨왔다.

예수원에 아내와 터를 잡은 그는 ‘네 번째 강 계획’이란 이름으로 북한 개방에 대비한 준비를 시작했다. 특히 그는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북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다음 세대에 통일한국을 위한 성경적 토지법과 노동관을 가르치는 데 주력했다.

그는 2004∼2005년 예수원에 북한학교를 열어 북한의 사회·문화를 알리고 학생들과 선교 전략을 공유했다. 2006년부터는 매년 여름마다 3주간 노동학교를 열어 성경적 노동에 대해 강의했다. 또 북한 개방 이후 차세대 지도자를 육성키 위해 2010년 예수원 앞 폐교를 빌려 기독 대안학교인 생명의강 학교를 시작했다.

75년부터 공동체 기업으로 운영되던 삼수령 목장은 향후 북한 개방 이후를 연구하는 삼수령 센터와 공동체 마을, 청소년 수련원 터로 사용된다. 지난해 예수원은 산림청으로부터 그간의 숙원사업이던 목장 터 건축허가를 받았다.

“목장은 산림청 땅을 예수원이 임차해 운영하던 것이라 마음대로 건축을 할 수 없었어요. 아버지는 삼수령에 남북한과 한국교회 통일을 위한 센터를 세우길 원하셨기에 99년부터 태백시 민자유치사업 중 청소년 수련단지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지역 개발을 위해 추진된 일인 만큼 실시계획을 크게 해야만 했어요. 청소년 수련원뿐 아니라 2개의 공동체 마을 조성, 학교, 교육관 등을 짓기로 했는데 총 270억원이 들더군요. 너무 큰 돈이라 우선은 학교와 식당, 숙소 건물비용인 53억원을 준비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마음만 하나가 된다면

토레이 신부에겐 아버지로부터 40여년간 배워왔던 ‘믿음 재정’의 원칙이 있었다. 필요한 것을 믿음으로 구하는 방법에 익숙했던 그는 200억원대의 자금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저는 하나님과 삶 속에서 대화하듯 기도합니다. 어느 날 아침, ‘하나님, 저희 돈 굉장히 많이 필요합니다’라고 기도했더니 마음속에 강하게 음성이 들려요. ‘내게 돈을 달라고 하지 마라! 너는 내 일꾼이니 필요한 걸 다 주겠다. 하지만 돈은 구하지 마라.’ 졸지에 전 다른 사람들에게 찾아가 협조를 구해도 하나님께 재정을 위해 기도할 수 없는 신세가 돼 버렸지요.”

이어 그의 마음속에 다시 한 번 강하게 음성이 들렸다. 통일을 위해 기도하기 전 한국교회의 분열을 놓고 기도하라는 내용이었다. 교회의 분열은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인데, 이를 덮어놓고 나라의 통일만 외친다면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이다.

이때부터 토레이 신부는 모금을 위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한편 한국교회의 연합을 위해 기도했다. 남북통일과 북한선교보다 먼저 한국교회가 하나 되길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모금을 하면 할수록 한국교회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일인지 새삼 느껴요. 재력가 한 분이나 한 대형교회와 같이 진행했으면 금방 모금 목표 달성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개교회와 교파를 넘어 한국교회가 힘을 모아 삼수령 공동체 마을을 짓기 원합니다. 건축이란 실제적인 일을 하면서 마음을 하나로 모으려 합니다. 어렵지만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 믿습니다.”

그는 한국교회가 마음만 하나로 모은다면 모든 일은 다 해결될 수 있다고 봤다. 모든 것에는 삼수령 공동체 건축뿐 아니라 통일과 북한선교도 포함된다.

“누군가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언제든 돈 주실 수 있고, 북한 개방할 수 있어요. 그런데 왜 그렇게 안 하시는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곧 때가 오는데, 교회가 빨리 서로 용서하고 한마음이 돼야 해요. 교회가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세상도 움직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선 사람의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 거지요.”

토레이 신부는 교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도 분열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진단했다. 요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지역 갈등, 세대 분열, 빈부 격차 모두 하나 되지 못한 마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교회와 세상이 차이가 없다는 데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이혼, 가족 분열, 낙태… 사회문제가 모두 교회에 들어왔어요. 하나님께서 마음 아파하실 일들입니다. 통일 전에 남한 사회부터 하나가 돼야 해요. 사회가 하나 되기 전에 교회부터 하나가 돼야 하고요. 교회가 하나 되면 그 영향이 사회에 미칩니다. 사회 갈등이 해결되면 나라가 회복될 것이고요. 그렇지 않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저는 이를 위해 계속 기도할 것입니다. 지난 47년간 예수원이 한국을 위해 기도한 것처럼요.”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6839218

Comment +0

제2회 디아스포라 청년포럼,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개최

 

 

▲제2호 디아스포라 청년포럼이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개최됐다. ⓒ신태진 기자


 

제2회 디아스포라 청년포럼이 28일 오전 9시 건국대학교 새천년관 우곡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됐다. 이번 포럼은 청년들이 모여 미래통일한국을 준비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신촌아름다운 교회 이규 목사는 개회예배 설교에서 “느헤미야는 자신의 고향이 아닌 타국에 살았던 디아스포라였지만, 백성들을 연합해 결국 이스라엘의 성벽을 재건하는 사명을 완수했다”며 “이 시대의 청년 느헤미야들이 모여 함께 통일을 준비하며 각자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장이 되길 바란다”고 피력했다.

포럼은 총 6부에 걸쳐 진행됐으며, 한반도통일론, 통일과미디어, 통일과교육 등의 주제가 다뤄졌다. 예수원의 벤 토레이(Ben Torrey) 원장은 ‘네 번째 강 프로젝트’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북한은 김정일과 김일성에 대한 공식적인 찬양 때문에 진정한 예배나 찬양에 대한 감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 곳에서는 어떤 것도 자발적이 아닌 강제적으로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벤 토레이 원장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기독교 공동체는 북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우리의 마음과 물질을 나눌 때 북한을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문이 열리기 전에 속히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생들의 발표도 이어졌다. 박은아(연세대 정치외교학과) 학생과 유수연(건국대 영어영문학과) 학생은 “사람들은 통일을 정치체제나 정부의 통합으로 생각하거나 돈으로 환산하여 측정한다”며 “진정한 통일은 남북한 주민들의 마음이 통하는 것이며 남북한 청년들의 만남을 통해 그 시작을 열어나갈 수 있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종교 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252633

Comment +0

 

고(故) 대천덕 신부의 외아들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다는 벤 토레이(61·예수원 삼수령 본부장·사진) 신부가 한국교회에 고언을 쏟아냈다. 그는 28일 본보에 ‘북한을 지배하는 견고한 진과 교회의 반응에 관하여’라는 글을 보내 “한국교회가 북한을 덮고 있는 견고한 진에 맞서 하나가 되고 교회의 구조적인 죄까지 회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토레이 신부는 최근 한국교회의 시류에 대해 “교회가 연합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곳곳에 부정부패, 곧 죄라는 암이 퍼져 있다”며 “분열로 치닫고 있는 사회 속에서 교회는 더욱 불리한 입장에 놓여 힘겨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를 타개하려면 교회는 연약한 부분에 대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할 수 있어야 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죄, 가정과 교회 자체의 구조적인 죄까지 회개하고 용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 번째 강 프로젝트(the fourth river project)’ 등 남북한 통일과 이후 사역을 준비 중인 그는 “교회는 북한을 덮고 있는 견고한 진에 맞설 책임이 있지만 아직 준비가 돼 있지 못하다”고 안타까워했다. 토레이 신부는 “(북한의) 견고한 진을 맞서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연합이며, 교회가 분열된 상태라면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북한 상황을 영적인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세상 왕인 사탄이 소유하고 있고 그 땅과 백성은 어둠의 세력에 포로가 되어 있다. 궁극적으로 완전한 승리가 오겠지만 아직 그날이 이르지 않았기에 교회는 더욱 하나될 수 있어야 한다.”

교회의 연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위선 없이 서로 사랑할 것, 악한 것을 미워하고 선한 걸 붙잡을 것, 자신보다 상대방을 더 좋아하고 높일 것, 교정과 가르침을 받는 데 자신을 열어놓을 것 등. 토레이 신부는 “죄를 회개하고 서로 사랑할 때 북한을 덮고 있는 견고한 진조차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며 “과거 상처로부터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는 쓴 뿌리를 뽑아내 용서하자”고 덧붙였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4690516

Comment +0

 

“남북한이 정치적으로 통일되더라도 마음의 통일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언어와 문화 차이가 너무 심합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가 중요하고 교육을 통해 통일 이후를 준비시켜야 합니다.”

통일 세대를 위한 기독교 지도자 양육을 목표로 지난 3월 강원도 태백에서 개교한 ‘생명의강 학교’ 설립자 벤 토레이(60·사진) 삼수령연수원 본부장은 23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성경적 세계관을 가진 젊은이들이 많이 배출되어 남북한의 진정한 하나 됨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명의강 학교는 기독교 공동체인 예수원의 삼수령연수원에서 설립한 대안학교로 지난 봄 학생 9명과 교사 3명으로 시작했다. 태백시 하사미동 산7 인근 하사미 분교에서 한 학기를 마친 학생들은 태백시에서 5명, 예수원에서 1명, 태백 외 지역에서 3명 등으로 구성됐다.

토레이 본부장은 “학생들은 자라난 환경과 문화, 학력 차를 극복하고 서로 협력하며 지냈다”며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소명을 발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학기 동안 경쟁이나 학업 성취보다는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데 주력했던 학교는 6주마다 가족의 날을 정해 가족과 교사, 학생들이 모여 품성과 관계훈련을 쌓았다. 노동은 학교가 중시하는 분야 중 하나. 이는 예수원이 추구하는 ‘기도가 노동이며 노동이 기도’라는 정신의 구현이다.

학생들은 매주 화요일 삼수령연수원이 운영 중인 목장에서 소를 기르기도 하고 밭에서 옥수수를 심고 김을 맸다. 농사와 목장 일을 경험하면서 책임감과 자신감, 협동의식을 연마했다. 북한 공부도 빼놓지 않았다. 탈북자 출신 대학생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해 북한의 실상 등을 소개했다.

토레이 본부장은 “학생들은 노동과 공동체, 기도 등을 경험하는 것은 물론 교과 공부를 하면서 성경적 세계관을 갖게 됐다”며 “사랑 안에서 교사와 학생이 통합된 교육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토레이 본부장에 따르면 생명의강 학교 교사들은 교사직을 일종의 사역(ministry)으로 생각한다. 교사 이전에 예수원 공동체의 일원이기에 월급도 받지 않는다. 다음 학기엔 수학 담당 교사 한 명을 더 충원한다.

학교는 내년 중 10∼15명의 학생을 선발할 계획이다. 태백 지역에 학교에 대한 소문이 좋게 퍼져 있어 매년 학생들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13년부터는 탈북자 출신 학생이나 다문화가정 자녀들도 모집할 예정이어서 명실공히 통일 세대를 위한 학교로 자리매김할 계획이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4041275

Comment +0

벤 토레이 신부님이 한민족복음방송에서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2016년 6월 17일 

 

http://okcnradio.org/vou/p/2018

 

http://okcnradio.org/vou/p/2047

 

Comment +0

 

벤 토레이 신부님이 시애틀 온누리교회에서 강의한 영상입니다.
여호와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Ben Torrey 신부/ 사62:7/ 09.21)
2014년 9월 21일

 

 http://www.seattleonnuri.com/snm12/vid_sun/12714

Comment +0

'예수원(Jesus Abbey)' 설립자 고 대천덕 신부의 아들인 벤 토레이 선교사는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시애틀형제교회(담임 권 준 목사)와 타코마 순복음 큰빛교회(담임 김승희 목사), 시애틀 온누리교회(담임 정광호 목사)에서 '예수원과 북한사역' 주제로 집회를 인도했다.

벤 토레이 선교사는 21일 시애틀 온누리교회에서 "여호와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사62:7)는 제목으로 예루살렘의 회복을 설교하며, 북한의 평양 역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회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Like Us on Facebook

벤 토레이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갈 때 예루살렘이 무너졌듯이 평양도 하나님을 빼앗겨 어둠의 땅이 되었지만, 황폐한 이스라엘을 회복하신 하나님께서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렸던 평양 역시 회복하실 것"이라며 "우리는 기도로 평양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며, 북한이 개방과 북한의 복음화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벤 토레이 선교사는 "통일 이전에 먼저 북한에 개방이 올 것이며, 북한 개방으로 우리가 북한에 들어갈 때 준비된 모습으로 또한 공동체의 모습으로 가야한다"며 "북한 복음화를 위해 준비된 모습과 진정한 공동체로서의 섬김과 사랑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남북 통일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벤 토레이 선교사가 북한 사역과 남북한 통일을 소명으로 받은 것은 52세이던 2002년이다. 고 대천덕 신부의 빈소를 지키던 중 지인으로부터 에덴동산에는 4개의 강이 흐르는데 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발원지라 '삼수령(三水嶺)'이라 불리는 예수원에는 세 개의 강이 흐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예수원에 네 번째 강이 필요하고 그것은 북한으로 향하는 통일 사역으로 알았다.

이후 북한 복음화와 남북한 통일을 위한 일을 시작하게 됐고, 북한 개방을 대비해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의 준비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네 번째 강 계획'이란 이름으로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북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다음 세대에 통일한국을 위한 성경적 토지법과 노동관을 가르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천덕 신부의 소천 후 2005년부터 아내와 함께 예수원에 정착한 밴 토레이 선교사는 미국에서 IT 전문가와 교육자의 삶을 내려놓고 10여 년간 '남북통일' '북한선교'를 위해 일하고 있다.

벤 토레이 선교사는 4대에 걸친 목회자 가문을 잇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버지인 대천덕 신부는 성공회 사제로 강원도에 예수원을 설립해 기도와 노동, 선교를 위해 일생을 매진했고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 <나와 하나님>, <우리와 하나님>, <성령론II>를 저술하며 한국의 모든 교단으로부터 깊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또한 벤 토레이 선교사의 할아버지 역시 장로교 목사로 6.25 한국 전쟁 당시 의수족 공장을 설립, 전쟁으로 불구가 된 많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며, 증조 할아버지인 토레이 박사는 회중교회 목사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성령론>을 저술한 유명한 설교가이자 학자였다.


기독일보 김브라이언 기자 seattle@chdaily.com

입력 Sep 23, 2014 11:48 AM PDT

 

http://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80421/20140923/벤-토레이-선교사-평양-회복-위해-간구하며-북한-복음화-준비해야.htm

Comment +0

2014년 9월 18일~ 19일
GBC미주복음방송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하신 벤토레이 신부님 강의입니다.

 

http://www.vercoop.com/external_api/popup_auto_widget.html?code=977&widgetId=widget_list&width=690&height=600&size=690x600&params=undefined

Comment +0

 

 

2014년 9월 19일
VOA 미국의 소리 방송에서 인터뷰한 것입니다.

 

4대째 '한국 사랑' 벤 토레이 신부(1)

http://www.voakorea.com/audio/2454266.html 

 

4대째 '한국 사랑' 벤 토레이 신부(2)

https://www.voakorea.com/a/2462169.html

Comment +0

 

[남가주 사랑의교회] 특별새벽부흥회 강의

주님의 임재, 기도의 자리 (히  10:19-11)
벤 토레이

2010년 12월 09일 강의 입니다

 

http://www.sarang.com/pray_sermon/37/?lan=ko&category=10&pid=&caf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list_style=calssic&select_arrange=headnum&desc=asc

Comment +0

 

[남가주 사랑의교회] 주일 예배

평안의 매는 줄 (엡4:1~3)

벤 토레이

2010년 9월 19일 강의 입니다.

 

 http://www.sarang.com/srtv_sermon/475/?lan=ko&sub=srtv

Comment +0

 

[남가주 사랑의교회]-토요새벽연합예배 강의 입니다.

길을 예비하라(사62:10)  - 벤 토레이

2010년 9월 18일

 

 http://www.sarang.com/srtv_saturday/433/?lan=ko&sub=srtv

Comment +0

 

2010-08-03 제인토레이 사모 /산골짜기에서 부친 천국의 편지

2010-08-04 제인토레이 사모와 가족들/한국을 사모한 토레이 가문

*CTS 2회 방영분 입니다.

 

http://www.cts.tv/prog/program/happy/content.asp?PID=P4&DPID=107809

 

 http://www.cts.tv/prog/program/happy/content.asp?PID=P4&DPID=107857

Comment +0

 

GH4NK

2010년 7월

 

 http://www.heart4nk.org/gh4nk_07/main/interview.html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