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계 2006.05
기도와 겸손한 마음으로
이번 달부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있는 여러 교파를 하나로 통일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정통적이고 성경에 근거한 신학적 이론을 나누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북한의 문이 열렸을 때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가 하나되는 것이라고 계속해서 주장해왔습니다. 국가가 하나 되기 전에 먼저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교파들로 나뉘어져 있고 오랫동안 분단으로 인해 고통스런 역사를 가진 이 나라에서 진정한 통일은 쉬운 과제가 아닙니다. 유감스럽지만 이런 말을 하는 내게도 마법의 힘을 가진 새로운 대안은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성경에서 보여 주는 몇 가지 생각들을 나누는 것뿐입니다. 그렇더라도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몸의 하나 됨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와 겸손한 마음은 우리의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교회’라는 단어가 가지는 보편적인 의미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 전체에서 교회에 사용된 그리스 단어는 ‘에클레시아’인데 이것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모인 사람들,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해서 모인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라는 단어에 더 깊은 의미가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그것은 교회는 ‘거룩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절에 보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의 체류자, 나그네, 행인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벧전 2: 9~11).
이 말씀 안에는 교회에 대해 우리가 집중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위의 말씀에서 베드로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모인 사람들,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있으면서도 개인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 대해 또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몸’이라는 단어인데 나뉘어질 수 없는 것, 개인으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에베소서 5장 23~32절에서 그는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남편들에게 요구합니다. 그리고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을 사랑함같이 하라고도 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보다 더 친밀하고 풍성한 표현이 또 있겠습니까? 바울은 32절에서는 이것을 큰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표현은 골로새서에도 나옵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 1:18).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이제 교회의 하나 됨의 중요성에 대한 시리즈의 첫 장을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교회가 하나의 몸이고 어떤 다른 몸이 아니라는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모든 곳에 계신다면 왜 다른 곳에는 안 계신 것처럼 두 세 사람이 모인 그 곳에 있겠다고 하셨겠습니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바로 그 곳에 존재한다는 의미이고, 그 특별한 방법이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여 모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현재에 존재하고, 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유기체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이 나뉘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몸이 마비되고 정상적인 활동을 못하는 장애를 거쳐 결국에는 죽게 됩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몸이 바로 그런 모습은 아니었는지요?†
English Article
The Chistian Church(2006.05).pdf
이 글은 신앙계 예수원 네 번째강 프로젝트
「통일시대를 연다」에 기고한 글입니다.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서면에 의한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없이 내용의 일부를 인용하거나 발췌하는 것을 금합니다.
© Reuben G. Torrey. All rights reserved.
'삼수령에서 온 편지 > 벤 토레이 칼럼 & 읽을 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천덕 절기설교]성탄메시지 "자신을 비우신 예수님" (0) | 2018.12.25 |
---|---|
벤 토레이 칼럼-경건한 가정(크리스마스 묵상) (0) | 2018.12.21 |
벤 토레이 칼럼- 세례를 통한 연합 (0) | 2018.12.13 |
대천덕 신부의 통일을 위한 코이노니아 - 대림절의 의미 (0) | 2018.12.03 |
벤 토레이 칼럼 - 그리스도의 신부를 치유하라 (0) | 2018.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