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령 센터(예수원)- 이 땅에 생수의 강물을 흐르게 하라!

신앙계 2006.06

세례를 통한 연합

 

 

지난달에 우리는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의 연합에 관한 성경적 접근을 시작하면서 교회는 거룩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임이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몸임을 알았습니다. 이번 달에는 마태복음 2819절에서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세례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지에 관해 나누고자 합니다.

 

고린도전서 1213절에서 바울은 우리 모두가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 했고, 에베소서 44~5절에서는 하나의 몸과 하나의 세례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몸 안에서 연합하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례의 물을 통해 이 연합으로 들어갑니다.

 

바울은 또한 로마서 63~4절에서 세례는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새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골로새서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2:11~12).

 

이 말씀들을 통해 우리는 세례가 죽음에서 새로 태어남으로의 변이 즉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 된 새로운 가족으로 태어나게 하는 변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211절에서 바울은 그것을 할례와 연관 짓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언약의 상속자가 되고, 그 가족의 온전한 일원이 되는 것은 할례를 통해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이스라엘 즉 교회라는 가정에 태어나고 하나님의 언약의 상속자가 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또한 디도서 35~7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좇아 새 생명의 씻음 즉 세례에 의해 상속자가 되었으며 그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썼고, 베드로 역시 베드로전서 321절에서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라고 했습니다.

세례는 우리를 깨끗하게 씻음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줌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인 새 가족이 되게 함으로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의해 일어나고 우리는 성령의 권능에 의한 세례를 통해 이 부활에 참예합니다.

 

우리가 세례의 덕을 입기 위해서는 갈리디아서 326~27절에서 보듯이 우리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는 남습니다. 세례를 받은 모든 자들이 믿음이 있고 순종적이지 않은데, 그렇다면 그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13장의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가운데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의인과 악인 둘 다 존재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선과 악의 구별은 세상의 마지막 날에만 이루어질 것임도 지적하셨습니다. 그 전에 그것을 구별하려는 시도는 어떤 것이든 잘못될 수 있고, 유익보다 해가 더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마지막 날에 알곡과 가라지를 분류하실 분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세례를 받은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고, 우리는 세례로 말미암아 새로운 가족 안에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가족에 속하고, 서로를 돌보아주어야 하는 구성원들입니다.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좀 고집을 부리고 제 멋대로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연합을 위한 토대를 추구할 때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English Aricle  Baptism(2006.06).pdf

이 글은 신앙계 예수원 네 번째강 프로젝트

통일시대를 연다기고한 글입니다.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서면에 의한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없이 내용의 일부를 인용하거나 발췌하는 것을 금합니다.

© Reuben G. Torrey.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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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계 2006.05

기도와 겸손한 마음으로

 

 

이번 달부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있는 여러 교파를 하나로 통일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정통적이고 성경에 근거한 신학적 이론을 나누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북한의 문이 열렸을 때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가 하나되는 것이라고 계속해서 주장해왔습니다. 국가가 하나 되기 전에 먼저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교파들로 나뉘어져 있고 오랫동안 분단으로 인해 고통스런 역사를 가진 이 나라에서 진정한 통일은 쉬운 과제가 아닙니다. 유감스럽지만 이런 말을 하는 내게도 마법의 힘을 가진 새로운 대안은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성경에서 보여 주는 몇 가지 생각들을 나누는 것뿐입니다. 그렇더라도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몸의 하나 됨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와 겸손한 마음은 우리의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교회라는 단어가 가지는 보편적인 의미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 전체에서 교회에 사용된 그리스 단어는 에클레시아인데 이것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모인 사람들,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해서 모인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라는 단어에 더 깊은 의미가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그것은 교회는 거룩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절에 보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의 체류자, 나그네, 행인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벧전 2: 9~11).

 

이 말씀 안에는 교회에 대해 우리가 집중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위의 말씀에서 베드로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모인 사람들,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있으면서도 개인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 대해 또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라는 단어인데 나뉘어질 수 없는 것, 개인으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에베소서 523~32절에서 그는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남편들에게 요구합니다. 그리고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을 사랑함같이 하라고도 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보다 더 친밀하고 풍성한 표현이 또 있겠습니까? 바울은 32절에서는 이것을 큰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표현은 골로새서에도 나옵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1:18).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1:24).

 

이제 교회의 하나 됨의 중요성에 대한 시리즈의 첫 장을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교회가 하나의 몸이고 어떤 다른 몸이 아니라는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마태복음 1820절에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모든 곳에 계신다면 왜 다른 곳에는 안 계신 것처럼 두 세 사람이 모인 그 곳에 있겠다고 하셨겠습니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바로 그 곳에 존재한다는 의미이고, 그 특별한 방법이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여 모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현재에 존재하고, 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유기체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이 나뉘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몸이 마비되고 정상적인 활동을 못하는 장애를 거쳐 결국에는 죽게 됩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몸이 바로 그런 모습은 아니었는지요?

 

English Article

The Chistian Church(2006.05).pdf

 

이 글은 신앙계 예수원 네 번째강 프로젝트

통일시대를 연다기고한 글입니다.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서면에 의한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없이 내용의 일부를 인용하거나 발췌하는 것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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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기도하실 때 모든 신자들이 하나 되어 온 세상이 하나님을 믿게 해 달라고 아버지께 구하셨습니다.

 지금은 비록 신자들이 하나 되지 않아서 복음 전도가 어렵지만, 이제라도 속히 신자들이 서로 사랑함으로써 주 안에서 하나가 되어 모든 사람을 믿음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대림절의 의미이자, 강조하고 싶은 말씀입니다.

 

 대림절은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할가요? 또 그 날에 심판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답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여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하며, 온 교회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끼리 서로 싸우기만 하고, 서로 거짓말쟁이요 이단이라고 말한다면 누가 우리 말에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요한은 한 목소리로 광야에서 외치면서 예수님의 길을 닦았습니다. 그런데 광야 같은 이 사회에서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하나 된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여러 목소리로 서로 다투고 비판하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고, 심지어 예수 믿는 사람들은 미친 것 같다고 합니다.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에 힘이 빠지고, 능력도 없으며, 행동으로 증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특별한 제목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 말씀을 보면, 요한은 주의 길을 곧게 하라는 소리를 받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재림하실 구주 예수님의 길을 곧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 "완전한 평강"[대천덕 절기 설교, 홍성사, 2006]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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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계 2006.03

 

그리스도의 신부를 치유하라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의 신부를 위해 흘리는 눈물입니다. 신부는 죄악으로 더렵혀져 있습니다. 신부의 몸은 연합하지 못함과 질투, 교만으로 상처입고, 찢기고, 만신창이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언젠가는 정결하고 온전하고 아름답고 순결한 옷을 입고 그분 앞에 서야 하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그 신부에 합당한 모습이 아닙니다. 현재의 모습에서 미래 신부의 모습으로 변화되기 위한 여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예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여정입니다.

 

울고 계신 예수님

 

우리는 지금까지 북한 선교를 위한 연합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 왔습니다. 현재 우리의 연합되지 못한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북한 땅으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도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연합은 단지 북한 선교를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만약 북한 선교라는 토대 위에서 연합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결단코 그것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신부의 연합과 치유는 한 국가를 위한 선교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 국가가 북한처럼 어둡고 상처입고 하나님의 진실된 사랑을 받는 나라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우리는 북한을 위해 연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해, 우리 자신을 위해 연합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울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해야 합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15:11~12).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부의 치유와 정결케 되는 일은 회개에서 시작됩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23:37~38).

 

우리는 예루살렘입니다. 왜 동방의 예루살렘이 저토록 황폐해졌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교만과 탐욕, 명예욕으로 서로를 짓밟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3장에 나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입니다.

회개로 시작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에서 수십 년 간 서로를 비난하고 싸우면서 서로에게 준 상처들과 다른 이데올로기, 다른 정부를 치유할 수 있는 진리의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상처를 지속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견고한 토대를 찾아 그 위에 겸손하고 연합된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찾아보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17, 에베소서 44~5, 에베소서 529~30, 갈라디아서 327~29절 그 외에도 성경 곳곳에 있습니다.

 

형제 자매님들, 제발 북한을 위해,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우리를 신부로 부르시고 정결하고 온전케 하기 위해 죽으신 그분을 위해 회개하고 연합합시다. 이 일을 조금이라도 소홀히 여긴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보혈에 침을 뱉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English Article  Healing the Bride of Christ(2006.03).pdf

 

이 글은 신앙계 예수원 네 번째강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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