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령 센터(예수원)- 이 땅에 생수의 강물을 흐르게 하라!

자기를 비우신 예수님

 

이곳 예수원에서 날마다 드리는 아침 예배(조도) 시간에 에베소서를 읽기 시작했는데, 에베소서 1장에서 매우 놀라운 메시지를 발견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소러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 주는 엘리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우리 예수원 공동체는 하늘과 땅에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교회에 관한 내용이 많습니다. 하지만 왠지 그 말씀이 거의 성취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원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삶에서 성경적인 교회 개념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쉽지는 않지만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일련의 과정은 예수께서 이 땅에 출생하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생일 날짜를 잘못 계산해서 경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실제 생일은 봄철입니다. 물론 그것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이 아기가 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그분은 하늘나라를 떠나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그 결과 그분은 참으로 무기력한 존재가 되셨고, 전적으로 마리아와 요셉에게 의지해야 하는 상태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갓난아기가 되실 만큼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도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계속해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어린 시절부터 성전에서 학자들과 더불어 온갖 종류의 질문을 할 만큼 독립적인 사고력을 지니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가나의 결혼 잔치 때까지 부모님께 순종하셨습니다. 공생애 사역을 시작해서야 비로소 한 무리의 제자들을 이끄는 강력하고 영감을 주는 지도자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곧 많은 제자들을 모으셨지만, 어떤 어려운 가르침을 하신 이후로 그들 가운데 대부분이 예수님을 떠나고 단지 열두 명만 남았습니다. 자신을 비운다는 말에는 타협 없이 온전한 진리(The Whole Truth)를 견지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순종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자신의 뜻을 행사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하셨고,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하나님은 그 크신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 나라에서 자기 오른편에 않게 하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분을 만물 이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모든 것을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분이 계신 곳이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의 말구유에 누우신 어린 아기를 생각할 때 우리는 또한 그분을 통하여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고, 만물 안에서 만물을 완성하시는 충만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을 비우신 그분은 이제 우리를 통하여 만물을 충만케 하십니다. 이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만물을 충만케 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하시는지 알려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물어봅시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청종할 수 있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일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때로 그 일은 어린 아기가 되는 것처럼 단순해 보이기도 할 것이고, 때로는 여러 제자들을 인도하는 것처럼 복잡하기도 할 것이며, 때로는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처럼 어렵겠지만, 그 모든 일은 이 땅에 하나님의 충만이 넘치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요!

 

홍성사, 교회력에 따른 대천덕 절기설교, 성탄메시지 "자신을 비우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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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계 2010.12

경건한 가정

 

육신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죄 때문에 비틀리고 왜곡된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께서는 가정을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습으로 회복하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몇 달 동안 가정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는지, 어떻게 죄가 그 형상을 깨뜨렸는지, 어떻게 그 형상이 다시 회복될 수 있으며 이것이 자녀 양육과 사회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말입니다.

 

이번 달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예수의 탄생에 대한 설교가 온 땅에 가득한 달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크리스마스 찬송의 아름다운 음악이 교회를 가득 채울 것입니다. 겨울이 깊어갈 때 찾아오는 기대와 흥분이 있습니다. 낮이 짧아지고 어둠이 빨리 찾아올수록, 아주 오래 전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한 아기를 기억하는 이 기쁜 축하행사에 대한 우리의 열망은 점점 커져갑니다.

 

이 때쯤이면 예수님이 태어나신 한 경건한 가정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게 됩니다. 창조주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성취한 가정을 꼽으라면 틀림없이 이 가정이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돌보고 양육하는 하나님 손의 역할을 하는 아름다운 순종의 모델을 봅니다. 또한 우리는 요셉에게서 가르치시는 하나님 목소리의 역할을 하며 성실하게 가정을 돌보고 섬긴 한 남자를 봅니다.

 

매년 이맘때 읽게 되는 성경구절의 일관된 주제는 순종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단순하고 겸손한 순종. 마리아는 천사에게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누가복음 1:38)라고 반응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뜻과 가르침을 단순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마태복음 1:2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마태복음 2:14),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마태복음 2:21) 이 구절들을 보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사람들, 서로 믿고 섬겼던 사람들의 확실한 순종이 나와 있습니다.

 

이들은 의심과 의문을 지닌 채 이 놀랍도록 새로운 삶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천사를 통해 말씀하셨을 때, 모든 의심은 해결되었고 마음으로부터 순종과 믿음이 흘러나왔습니다. 우리는 요셉과 마리아의 삶에서 두 가지 가르침을 발견합니다. 새롭게 가정을 꾸릴 때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과, 필요를 만날 때 확신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물론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낳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마리아의 경우와 같은 일을 직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 의심과 질문이 있었던 것처럼 결혼을 앞둔 여자라면 모두 자신만의 의심과 질문,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는 의심과 질문에 접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순종을 하나님 뜻에 즐겁게 참여하는 일로 만드시는 하나님을 신뢰했던 마리아를 본받읍시다. 또한 요셉의 경우를 봅시다. 물론 겉보기에는 자신을 배반하고 다른 사람과 큰 죄를 저질렀을 것이라 보여지는 아내를 맞을 준비를 하는 남자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다 문제라고 보일 때조차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 있어 요셉의 인도를 받읍시다.

 

처음에는 충격, 두려움, 의심이었던 것들이 서로를 향한 깊은 사랑과 깊은 믿음으로 자라났습니다. 이 신뢰의 주춧돌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첫번째 장에서 이 순종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에서 등록하고 미리 정해진 세금을 내라는 인간과 하나님의 법에 모두 순종했습니다. 또한 요셉은 천사가 꿈에 나타나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려주며 위험을 경고했을 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바로 순종했습니다. 마리아 역시 굉장한 사건과 예언에 대해 조용히 받아들였습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누가복음 2:19)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누가복음 2:51)

 

새로운 가정을 시작하며 어떤 일에 직면하든-사실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과정 내내 우리를 인도하시고 새로 만들어진 이 연약한 하나님의 형상을 지탱하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불행히도 요즈음 너무 많은 가정들이 이런 주춧돌 없이 시작됩니다. 저는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아직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길을 걷고 있지 않은 사람과의 결혼에 이르게 하는 압력에 저항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사랑과 책임감이 부부관계를 오래 지속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순종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 결혼은 가장 약하고 가장 믿을 수 없는 주춧돌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가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훌륭한 본보기입니다. 처음부터 그는 의롭고 사려깊은 남자였습니다. 그의 영혼을 완전히 부서뜨릴 수도 있는 일에 직면했을 때도, 요셉은 어떻게 하면 가능한 한 조용히 관계를 끝맺을까만을 생각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마태복음 1:18-19)

 

또한 그는 행동에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확신으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주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마태복음 1:20)

 

주님을 가르침을 들었을 때 요셉은 순종했습니다. 한번이 아니라 천사가 말할 때마다 매번 그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아마 일생 동안 그랬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에게 책임감을 가졌고 아내인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돌보았습니다.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마태복음 1:24-25)

 

여기 자신이 순종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의 보호를 받으며 가정에서 아름다운 리더십과 권위를 발휘하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아내와 아기를 돌보고 보호하며 필요한 것을 공급했습니다. 우리도 그만큼 되기를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어머니들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완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즐거워했던 하나님의 젊은 여종 마리아에게서 아름다운 본보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누가복음 1:46-49)

 

결혼과 어머니 노릇에 대한 부담감에 압도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우리의 힘 되시는 분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머니로서의 그녀의 삶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실 시므온의 그녀를 향한 예언은 큰 고통과 아픔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누가복음 2:35) 우리는 마리아가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멀게 느꼈던 때도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누가복음 2:48-51, 마태복음 12:46-50) 하지만 결국 그녀는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는 끔찍한 시간에도, 충실하게 그 곁을 지켰으며, 죽음에서도 그가 그녀를 돌보리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요한복음 19:25-27)

 

이 가장 경건한 가정을 우리의 결혼과 가정의 모델로 삼읍시다. 모든 것이 전부 잃어버린 것 같은 때에도 우리의 소망과 희망이 되기 위해 한 가정에 태어나서 양육되었던 성자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사랑의 이 아름다운 본보기를 기뻐합시다. 육신이 되신 말씀을 즐거워합시다. 우리 모두 정말 멋진 크리스마스를 보냅시다.

 

English Article Holy Family.pdf

 

이 글은 신앙계 예수원 네 번째강 프로젝트

통일시대를 연다기고한 글입니다.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서면에 의한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없이 내용의 일부를 인용하거나 발췌하는 것을 금합니다.

© Reuben G. Torrey.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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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계 2006.06

세례를 통한 연합

 

 

지난달에 우리는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의 연합에 관한 성경적 접근을 시작하면서 교회는 거룩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임이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몸임을 알았습니다. 이번 달에는 마태복음 2819절에서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세례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지에 관해 나누고자 합니다.

 

고린도전서 1213절에서 바울은 우리 모두가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 했고, 에베소서 44~5절에서는 하나의 몸과 하나의 세례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몸 안에서 연합하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례의 물을 통해 이 연합으로 들어갑니다.

 

바울은 또한 로마서 63~4절에서 세례는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새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골로새서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2:11~12).

 

이 말씀들을 통해 우리는 세례가 죽음에서 새로 태어남으로의 변이 즉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 된 새로운 가족으로 태어나게 하는 변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211절에서 바울은 그것을 할례와 연관 짓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언약의 상속자가 되고, 그 가족의 온전한 일원이 되는 것은 할례를 통해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이스라엘 즉 교회라는 가정에 태어나고 하나님의 언약의 상속자가 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또한 디도서 35~7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좇아 새 생명의 씻음 즉 세례에 의해 상속자가 되었으며 그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썼고, 베드로 역시 베드로전서 321절에서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라고 했습니다.

세례는 우리를 깨끗하게 씻음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줌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인 새 가족이 되게 함으로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의해 일어나고 우리는 성령의 권능에 의한 세례를 통해 이 부활에 참예합니다.

 

우리가 세례의 덕을 입기 위해서는 갈리디아서 326~27절에서 보듯이 우리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는 남습니다. 세례를 받은 모든 자들이 믿음이 있고 순종적이지 않은데, 그렇다면 그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13장의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가운데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의인과 악인 둘 다 존재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선과 악의 구별은 세상의 마지막 날에만 이루어질 것임도 지적하셨습니다. 그 전에 그것을 구별하려는 시도는 어떤 것이든 잘못될 수 있고, 유익보다 해가 더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마지막 날에 알곡과 가라지를 분류하실 분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세례를 받은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고, 우리는 세례로 말미암아 새로운 가족 안에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가족에 속하고, 서로를 돌보아주어야 하는 구성원들입니다.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좀 고집을 부리고 제 멋대로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연합을 위한 토대를 추구할 때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English Aricle  Baptism(2006.06).pdf

이 글은 신앙계 예수원 네 번째강 프로젝트

통일시대를 연다기고한 글입니다.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서면에 의한 저자와 출판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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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계 2006.05

기도와 겸손한 마음으로

 

 

이번 달부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있는 여러 교파를 하나로 통일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정통적이고 성경에 근거한 신학적 이론을 나누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북한의 문이 열렸을 때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가 하나되는 것이라고 계속해서 주장해왔습니다. 국가가 하나 되기 전에 먼저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교파들로 나뉘어져 있고 오랫동안 분단으로 인해 고통스런 역사를 가진 이 나라에서 진정한 통일은 쉬운 과제가 아닙니다. 유감스럽지만 이런 말을 하는 내게도 마법의 힘을 가진 새로운 대안은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성경에서 보여 주는 몇 가지 생각들을 나누는 것뿐입니다. 그렇더라도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몸의 하나 됨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와 겸손한 마음은 우리의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교회라는 단어가 가지는 보편적인 의미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 전체에서 교회에 사용된 그리스 단어는 에클레시아인데 이것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모인 사람들,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해서 모인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라는 단어에 더 깊은 의미가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그것은 교회는 거룩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절에 보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의 체류자, 나그네, 행인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벧전 2: 9~11).

 

이 말씀 안에는 교회에 대해 우리가 집중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위의 말씀에서 베드로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모인 사람들,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있으면서도 개인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 대해 또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라는 단어인데 나뉘어질 수 없는 것, 개인으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에베소서 523~32절에서 그는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남편들에게 요구합니다. 그리고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을 사랑함같이 하라고도 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보다 더 친밀하고 풍성한 표현이 또 있겠습니까? 바울은 32절에서는 이것을 큰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표현은 골로새서에도 나옵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1:18).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1:24).

 

이제 교회의 하나 됨의 중요성에 대한 시리즈의 첫 장을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교회가 하나의 몸이고 어떤 다른 몸이 아니라는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마태복음 1820절에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모든 곳에 계신다면 왜 다른 곳에는 안 계신 것처럼 두 세 사람이 모인 그 곳에 있겠다고 하셨겠습니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바로 그 곳에 존재한다는 의미이고, 그 특별한 방법이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여 모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현재에 존재하고, 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유기체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이 나뉘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몸이 마비되고 정상적인 활동을 못하는 장애를 거쳐 결국에는 죽게 됩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몸이 바로 그런 모습은 아니었는지요?

 

English Article

The Chistian Church(2006.05).pdf

 

이 글은 신앙계 예수원 네 번째강 프로젝트

통일시대를 연다기고한 글입니다.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서면에 의한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없이 내용의 일부를 인용하거나 발췌하는 것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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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기도하실 때 모든 신자들이 하나 되어 온 세상이 하나님을 믿게 해 달라고 아버지께 구하셨습니다.

 지금은 비록 신자들이 하나 되지 않아서 복음 전도가 어렵지만, 이제라도 속히 신자들이 서로 사랑함으로써 주 안에서 하나가 되어 모든 사람을 믿음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대림절의 의미이자, 강조하고 싶은 말씀입니다.

 

 대림절은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할가요? 또 그 날에 심판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답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여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하며, 온 교회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끼리 서로 싸우기만 하고, 서로 거짓말쟁이요 이단이라고 말한다면 누가 우리 말에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요한은 한 목소리로 광야에서 외치면서 예수님의 길을 닦았습니다. 그런데 광야 같은 이 사회에서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하나 된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여러 목소리로 서로 다투고 비판하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고, 심지어 예수 믿는 사람들은 미친 것 같다고 합니다.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에 힘이 빠지고, 능력도 없으며, 행동으로 증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특별한 제목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 말씀을 보면, 요한은 주의 길을 곧게 하라는 소리를 받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재림하실 구주 예수님의 길을 곧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 "완전한 평강"[대천덕 절기 설교, 홍성사, 2006]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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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계 2006.03

 

그리스도의 신부를 치유하라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의 신부를 위해 흘리는 눈물입니다. 신부는 죄악으로 더렵혀져 있습니다. 신부의 몸은 연합하지 못함과 질투, 교만으로 상처입고, 찢기고, 만신창이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언젠가는 정결하고 온전하고 아름답고 순결한 옷을 입고 그분 앞에 서야 하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그 신부에 합당한 모습이 아닙니다. 현재의 모습에서 미래 신부의 모습으로 변화되기 위한 여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예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여정입니다.

 

울고 계신 예수님

 

우리는 지금까지 북한 선교를 위한 연합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 왔습니다. 현재 우리의 연합되지 못한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북한 땅으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도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연합은 단지 북한 선교를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만약 북한 선교라는 토대 위에서 연합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결단코 그것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신부의 연합과 치유는 한 국가를 위한 선교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 국가가 북한처럼 어둡고 상처입고 하나님의 진실된 사랑을 받는 나라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우리는 북한을 위해 연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해, 우리 자신을 위해 연합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울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해야 합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15:11~12).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부의 치유와 정결케 되는 일은 회개에서 시작됩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23:37~38).

 

우리는 예루살렘입니다. 왜 동방의 예루살렘이 저토록 황폐해졌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교만과 탐욕, 명예욕으로 서로를 짓밟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3장에 나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입니다.

회개로 시작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에서 수십 년 간 서로를 비난하고 싸우면서 서로에게 준 상처들과 다른 이데올로기, 다른 정부를 치유할 수 있는 진리의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상처를 지속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견고한 토대를 찾아 그 위에 겸손하고 연합된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찾아보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17, 에베소서 44~5, 에베소서 529~30, 갈라디아서 327~29절 그 외에도 성경 곳곳에 있습니다.

 

형제 자매님들, 제발 북한을 위해,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우리를 신부로 부르시고 정결하고 온전케 하기 위해 죽으신 그분을 위해 회개하고 연합합시다. 이 일을 조금이라도 소홀히 여긴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보혈에 침을 뱉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English Article  Healing the Bride of Christ(2006.03).pdf

 

이 글은 신앙계 예수원 네 번째강 프로젝트

통일시대를 연다기고한 글입니다.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서면에 의한 저자와 출판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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