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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령에서 온 편지/벤 토레이 칼럼 & 읽을 거리

벤 토레이 칼럼 - 그리스도의 신부를 치유하라

 

신앙계 2006.03

 

그리스도의 신부를 치유하라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의 신부를 위해 흘리는 눈물입니다. 신부는 죄악으로 더렵혀져 있습니다. 신부의 몸은 연합하지 못함과 질투, 교만으로 상처입고, 찢기고, 만신창이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언젠가는 정결하고 온전하고 아름답고 순결한 옷을 입고 그분 앞에 서야 하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그 신부에 합당한 모습이 아닙니다. 현재의 모습에서 미래 신부의 모습으로 변화되기 위한 여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예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여정입니다.

 

울고 계신 예수님

 

우리는 지금까지 북한 선교를 위한 연합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 왔습니다. 현재 우리의 연합되지 못한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북한 땅으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도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연합은 단지 북한 선교를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만약 북한 선교라는 토대 위에서 연합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결단코 그것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신부의 연합과 치유는 한 국가를 위한 선교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 국가가 북한처럼 어둡고 상처입고 하나님의 진실된 사랑을 받는 나라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우리는 북한을 위해 연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해, 우리 자신을 위해 연합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울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해야 합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15:11~12).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부의 치유와 정결케 되는 일은 회개에서 시작됩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23:37~38).

 

우리는 예루살렘입니다. 왜 동방의 예루살렘이 저토록 황폐해졌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교만과 탐욕, 명예욕으로 서로를 짓밟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3장에 나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입니다.

회개로 시작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에서 수십 년 간 서로를 비난하고 싸우면서 서로에게 준 상처들과 다른 이데올로기, 다른 정부를 치유할 수 있는 진리의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상처를 지속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견고한 토대를 찾아 그 위에 겸손하고 연합된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찾아보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17, 에베소서 44~5, 에베소서 529~30, 갈라디아서 327~29절 그 외에도 성경 곳곳에 있습니다.

 

형제 자매님들, 제발 북한을 위해,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우리를 신부로 부르시고 정결하고 온전케 하기 위해 죽으신 그분을 위해 회개하고 연합합시다. 이 일을 조금이라도 소홀히 여긴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보혈에 침을 뱉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English Article  Healing the Bride of Christ(2006.03).pdf

 

이 글은 신앙계 예수원 네 번째강 프로젝트

통일시대를 연다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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