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계 2006.06
세례를 통한 연합
지난달에 우리는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의 연합에 관한 성경적 접근을 시작하면서 교회는 거룩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임이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몸임을 알았습니다. 이번 달에는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세례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지에 관해 나누고자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3절에서 바울은 “우리 모두가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 했고, 에베소서 4장 4~5절에서는 하나의 몸과 하나의 세례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몸 안에서 연합하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례의 물을 통해 이 연합으로 들어갑니다.
바울은 또한 로마서 6장 3~4절에서 세례는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새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골로새서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 2:11~12).
이 말씀들을 통해 우리는 세례가 죽음에서 새로 태어남으로의 변이 즉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 된 새로운 가족으로 태어나게 하는 변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1절에서 바울은 그것을 할례와 연관 짓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언약의 상속자가 되고, 그 가족의 온전한 일원이 되는 것은 할례를 통해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이스라엘 즉 교회라는 가정에 태어나고 하나님의 언약의 상속자가 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또한 디도서 3장 5~7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좇아 새 생명의 씻음 즉 세례에 의해 상속자가 되었으며 그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썼고, 베드로 역시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라고 했습니다.
세례는 우리를 깨끗하게 씻음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줌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인 새 가족이 되게 함으로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의해 일어나고 우리는 성령의 권능에 의한 세례를 통해 이 부활에 참예합니다.
우리가 세례의 덕을 입기 위해서는 갈리디아서 3장 26~27절에서 보듯이 우리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는 남습니다. 세례를 받은 모든 자들이 믿음이 있고 순종적이지 않은데, 그렇다면 그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13장의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가운데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의인과 악인 둘 다 존재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선과 악의 구별은 세상의 마지막 날에만 이루어질 것임도 지적하셨습니다. 그 전에 그것을 구별하려는 시도는 어떤 것이든 잘못될 수 있고, 유익보다 해가 더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마지막 날에 알곡과 가라지를 분류하실 분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세례를 받은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고, 우리는 세례로 말미암아 새로운 가족 안에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가족에 속하고, 서로를 돌보아주어야 하는 구성원들입니다.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좀 고집을 부리고 제 멋대로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연합을 위한 토대를 추구할 때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English Aricle Baptism(2006.06).pdf
이 글은 신앙계 예수원 네 번째강 프로젝트
「통일시대를 연다」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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