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령 센터(예수원)- 이 땅에 생수의 강물을 흐르게 하라!

 

백두대간에 흐르는 네번째 강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내가 만난 남한 사람들은 통일의 노래를 열심히 부르면서 북한과의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한국인의 정체성은 어느 누구에게서든지 볼 수 있습니다. 개개의 한국인은 서로 다를 수도 있겠지만, 국가적으로는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단일민족입니다. ”

백두대간 삼수령에서 이른바 ‘네번째강 계획’ (The Fourth River Project)을 펼치고 있는 벤 토레이(Reuben G. Torrey) 추진본부장의 말이다. 그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하지만 북한과 남한은 물리적인 장벽뿐만 아니라 60여 년의 분단 세월에 의해 나뉘어져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열강에 의해 서로 다른 이념으로 같은 민족이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국가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분단국가입니다. 한국정부는 물론 종교계와 재계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안보와 경제 및 정치적인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므로 통일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연합을 방해하는 또 다른 차원의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영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이 있습니다. 저희들이 펼치고 있는 ‘네번째강계획’은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영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네번째강 계획(The Fourth River Project)
필자는 2008년 부활절에 그토록 거창한 우리 민족의 남북통일의 염원을 풀어내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으로 그 과업을 실천하고 있는 주인공을 만나고자 강원도 태백시 적각동 산 62번지에 자리를 잡고 있는 예수원의 삼수령연수원을 찾았다. 예수원 창립자 대천덕 신부가 30여 년 전 예수원으로부터 약 15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이곳 태백산 백두대간에 15만평을 임차해 ‘분수령목장’을 건립. 한우를 사육하며 이처럼 절묘한 지점에서 예수원의 삼수령 연수원을 세워 미래를 향한 다채로운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 현장을 지키며 새로운 사역에 몰입하고 있는 남북통일의 파수꾼 벤 토레이 부부를 만나고자 찾았던 것이다.

“삼수령연수원은 남북통일의 날을 기대하고 바라보며 북한개방의 때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기관입니다. 저희 기관은 ‘네번째강 계획’(The Fourth River Project)을 비롯, 예수원글로벌스쿨(Jesus Abbey Global School), 삼수령청소년수련원의 본부가 될 것입니다.”

삼수령연수원 추진본부장 벤 토레이 신부의 목소리는 확신에 가득 차 있다. 그의 이야기는 차라리 신앙고백이라 할 것이다.

“삼수령의 위치는 상징적인 의미와 함께 전략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먼저 상징적 의미로 말할 것 같으면, 삼수령연수원은 대한민국의 동해 쪽에 위치한 태백산맥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지점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동해, 서해, 그리고 남해로 흘러들어 가는 세 강줄기의 근원이 됩니다. 이것은 상징적으로 볼 때, 예수님께서 인간생명의 근원이 되는 것과 같이 이곳의 위치도 생명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추진본부장 벤 토레이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삼수령의 위치는 한반도의 길이와 거의 동일한 백두대간 위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두가지를 상징하는데, 그 하나는 생명의 강이 백두대간을 통해 북한으로 흘러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복음을 들고 북녘땅으로 가라는 부르심입니다. 이것이 바로 ‘네 번째 강’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네번째강 계획“에 대한 개념을 짐작하기에 이른다.

벤 토레이, 그는 누구인가
벤 토레이, 그는 예수원의 창설자인 토레이(Reuben Archer Torrey)신부의 외아들이다. 그를 보다 자세하게 알기 위해 그의 아버지 토레이 신부의 가계를 살펴본다.

예수원 창설자 토레이(대천덕)신부의 가계
부인 : 현재인(Jane Grey Torrey), 1921년 2월 4일생
아들 : 대영복(Reuben Grey Torrey), 1950년 2월 7일생
자부 : 임재영(Elizabeth Bushnell Torrey), 1954년 11월 16일생
장녀 : 대명자(Yancey Clare Torrey), 1963년 5월 5일생
차녀 : 대명숙(De Berniere Janet Torrey), 1966년 10월 29일생

위의 기록에서 파악되는 바, 벤 토레이는 올해 쉰여덟 살이고, ‘대영복’이라는 한국이름을 갖고 있는데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주로 ‘벤’(Ben)이라 호칭하고 있다. ‘벤’은 히브리어로 ‘아들’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므로 결국 ‘토레이의 아들’이라고 해석될 수 있겠다.
그의 아내는 올해 54세이며 ‘Elizabeth Bushnell Torrey’라는 긴 이름을 갖고 있는데, 주로 ‘리즈’(Liz)로 호칭되고 있다. 왕년의 할리우드 인기 스타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똑같은 이름인데, 그녀처럼 빼어난 미모를 갖추고 있다고 주변사람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아닙네다. 저는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입네다. 시집 안 간 달이 하나가 있긴 합니다만, 결혼한 아들에 손자까지 두었으니 어쩔 수 없이 할머니가 됐습네다. 다만 남편을 조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그이와 함께 나누고자 이곳 태백산 삼수령까지 동행했습네다. 요즘 저희 부부는 목장에서 신혼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다. 다만, 딸이 보고 싶은 것 빼고는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답네다.”

진짜 진짜 행복한 모습이다. 남편 벤이 자신의 사생활을 털어놓는다.

“저는 1950년 미국에서 태어났고,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1957년 11월 처음 한국에 왔습니다. 1969년 제가 19살 때 미국으로 영구 귀국할 때까지 한국은 저의 고향이었습니다. 그때 한국에서의 10대 시절이 참 좋았습니다. 중학교 시절엔 서울에서 친한 친구들과 아주 좋은 시간을 보냈고, 제가 열다섯 살 되던 1965년엔 아버지를 도와 예수원을 개척하는 일을 했습니다. 예수원 사역을 시작할 때, 아버지와 저, 그리고 10명의 남자 교인들과 큰 군용 텐트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모험이었지만, 제가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열심히 했었던 기억 때문인지 아주 즐거웠습니다.”

벤 토레이, 그가 한국에서 10대 시절을 보내는 동안 교육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었었는지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원에서 살고 있는 동안 저는 미국 시카고에 있는 한 학교와 통신 교육을 하면서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그 과정은 홈스쿨과 비슷한 것이었지만, 공부는 완전히 혼자서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보다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을 이곳저곳 여행할 수 있었으며, 예수원을 건립하는데 활발하게 참여해서 도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들은 나의 생애 가운데 아주 중요한 일이었으며, 그런 과정들을 통해 대학 과정을 포함한 성인으로서의 삶을 착실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벤 토레이 부인 리즈(Liz)
필자의 생각 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벤 토레이의 부인 리즈에 관한 것이었다. 남편이야 토레이 가문의 어쩔 수 없는, 이른바 ‘업보’로서 예수원의 사역을 감당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아내 리즈의 입장은 그와는 다르지 않겠는가 하는 의문이 맴도는 것이다. 더욱이나 아직 한국어로 소통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편임에랴.

“맞습네다. 우리네 서양 사람들은 동양 사람들과는 다를 수 있습네다. 남편이 하는 일이니까 아내는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고 봅네다. 저 또한 그렇게 하지 않았습네다. 제가 남편을 따라서 한국에 온 것은, 제가 좋아서 전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입네다. 그러기에 아직 한국어로 의사를 표시하는 데 서투르고 여러모로 불편한 것이 많지만, 제가 이곳 삼수령 산속에서 이렇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의사소통하는 일에 얼마나 답답할 것이며, 또 부족한 것들은 얼만나 많겠는가. 그러나 리즈는 전혀 불평이 없다. 아니, 만족이다. 지극히 행복한 모습인 것을 그녀의 얼굴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남편 벤이 보충 설명을 거들어 준다.

“아내 리즈와 결혼한 것은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현명한 결정 가운데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대학 동창인 리즈는 그 당시 대학교에서 열 명도 채 안 되는 크리스천 중 한 명이었고, 성경공주나 기독교 동아리 활동을 통해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지내느라 대학교에 늦게 들어간 저하곤 나이 차이가 네 살이나 나지만, 30년이 넘는 결혼생활 동안 아내는 저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최고의 비평가였습니다. 리즈와 저는 1979년부터 한동안 한국에 나와 살았고, 우리 부부의 첫 아들 르우벤은 1979년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2년 동안 한국에 있었는데, 그중 1년은 예수원에서 보내면서 할아버지와 아름다운 사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천국에 올라가 계시는 지금, 아내와 전 이곳 삼수령에서 살기 위해 2005년 한국에 돌아와 네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도 한국에 돌아와 정착할 날이 올 것입니다.”

가문의 영광
이 대목에서 필자는 벤 토레이 신부에게 마음속에 깊숙이 담아 두고 있던 어려운 질문을 털어 놓았다.

“벤 토레이 신부님, 어려운 질문 한 가지를 하고자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아버지 토레이 신부님은 한국에서 믿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성자로 존경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참으로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혹여 ‘가문의 영광’이 아드님에겐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하하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아버지 토레이 신부님은 한국교회와 신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셨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를 ‘성자’라고 칭송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질문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참말로 존경합니다. 자신을 희생하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셨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성령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사셨던 분입니다. 외아들인 저한테까지도 모든 것을 아버지를 기준으로 삼는 것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저 또한 성령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살 수 있었습니다.”

벤 토레이에게 있어 직업의 선택도 자유함이 있었다. 그는 1975년 사라로렌스대학을 졸업했고, 1979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의 컴퓨터 IT분야 그룹인 앤더슨컨설팅 회사에서 20여 년간 시스템 디자인과 개발 및 지식관리(knowledge management) 업무에 종사했다.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코네티컷주 볼턴시의 기독교 학교(The King's School) 행정책임자로 일했다.

“좀 미묘한 질문입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벤 토레이 신부님이 한국을 찾아와 예수원 사역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버지 토레이 신부님의 승계자로서 온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떻습니까? 너무 구체적인 질문 같습니다만, 명확한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고목사님께서 왜 이런 질문을 하시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 숙제 아니겠습니까? 사실, 아버지 장례식 때 많은 분들이 그런 제안을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예수원을 맡아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왜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만, 그 때 저로선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1957년 제가 일곱 살 때부터 예수원의 설립자인 토레이 신부의 외아들로서 한국에서 열아홉 상가지 10대 시절을 살았습니다만, 예수원은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주신 사역이지 저의 사역은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했기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미국에서 제가 좋아하는 IT분야에서 마음껏 활동하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 왔으며, 어떻게 해서 예수원 삼수령연수원 사역을 맡게 되었는지 솔직하게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어는 누구도 고목사님처럼 이렇게 솔직한 질문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실은 저와 아내는 무척 고민했습니다. 21세기가 열리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비전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특별한 꿈을 꾸게 해주셨습니다.”
어떤 말씀, 어떤 꿈, 어떤 비전인가? 그것은 창세기 2장 10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 에덴동산에서 발원하고 있는 네 개의 강 이야기였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세기 2장 10절~14절)

“옳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발원한 네 개의 강, 그 말씀 속에서 ‘네번째 강’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가 세운 이곳 삼수령이야말로 생명의 근원지인 에덴동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는 영감이 스쳤습니다. 고목사님, 저의 이와 같은 영감(靈感)이 나이든 영감(老人)의 헛된 생각은 아니지요? 지극히 성서적인 영감이죠?”

호탕한 웃음과 함께 꿈을 펼쳐 보이는 벤 토레이 신부의 어조는 감개무량(感慨無量)에 비장미(悲壯美)까지 서려 있는 그 무엇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강권적인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됐고, 찬양할 때마다 주체할 수 없으리만큼 눈물이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로 하여금 북한을 품고 기도하게 하셨고, 한반도의 통일을 대비하라는 새로운 비전을 보여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터를 잡아 놓은 삼수령에 깊은 뜻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이곳이 동해(五十川)와 남해(洛東江), 서해(漢江)로 물이 흘러들어 가는 절묘한 삼수(三水点)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는데, 이곳이야말로 태백산맥을 통해 북쪽으로 생명의 강이 흘러들어 가야 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곧 ‘네번째강 프로젝트’(The Fourth River Project)입니다.”

벤 토레이의 부인 리그 사모가 남편의 이야기에 설명을 곁들인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저한테도 남편과 똑같은 꿈을 꾸게 해주셨습네다. 처음에는 제가 왜 남편을 따라 한국에 가야 하는지 잘 몰랐습네다. 저는 한국말도 잘 못하는데, 북한 사투리까지 익히면서 북한을 돕는 사역을 제가 감당할 수 있을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네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이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는 사건이었습네다.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출발하는 말씀 말입네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세였더라.  (창세기 12장 1절, 4절)

“아브라함은 자녀가 없었으니까 조카를 데리고 갔습네다만, 저에게 아들 둘 아직 미혼인 달이 하나 있잖아요. 딸을 미국에 떼어 놓고 오는 것은 많은 힘든 일이었습네다. 지금도 딸 아이 생각만 하면 가슴이 짠하답네다.”

어느새 리즈 사모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지금은 여기 삼수령이 저의 고향처럼 느껴집네다. 아주 편안합네다. 별로 큰 도움은 못되지만 남편 곁에 있는 것이 좋고, 무엇보다 연로하신 어머님 곁에 있다는 사실이 고맙기만 하답네다.”

리즈 사모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분은 예수원 창설자 토레이 신부의 부인이요, 그러니까 그녀에겐 시어머니가 되는 현재인(Jane Grey Torrey) 사모를 가리킨다. 필자가 부활절 아침 예수원 식구들과 함께 나누었던 식탁에서 현재인 사모는 필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리즈는 꼭 한국사람 같습니다. 효녀 심청이처럼 아주 착한 딸이랍니다.”

현재인 사모는 올해 88세, 비록 보행이 활발한 편은 못되지만 장녀 대명자(Yancey Clare Torrey)의 지극정성과 정회원 엘리사벳의 도움으로 예수원의 모든 예배에 참석할 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예수원의 영적 어머니로서 변함이 없는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두 시간이 넘도록 현재인 사모와 특별대담을 갖기도 했다. 건강이 염려됐지만, 너끈하게 감당해 주었다. 토레이 신부가 떠난 자리가 어찌 허허롭지 않으리요만, 믿음으로 잘 견뎌내고 있는 사모, 그녀는 참으로 경외로운 모습이었다.
필자는 2박 3일 예수원에 머무는 동안 모든 모임과 부활절예배에 참석하면서 예수원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내심 토레이 신부가 떠난 예수원의 앞날을 염려하며 기도했다. 그분의 자리가 너무 크고, 어느 누구도 그 자리를 메울 수 없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것이 어찌 필자만의 생각이었을까?
그러나 예수원은 지극히 평온했으며, 고향처럼 포근했다. 예수원의 모든 사역은 집단지도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계속되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필자는 자신의 믿음 없음을 부끄러워해야 했고, 주님의 주 되심(Lordship)을 고백하며 몸과 마음과 정성을 함께 모으고 있는 예수원 정회원들의 지도력에 감사하며 주께 찬양을 올려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할렐루야!

예수원의 삼수령연수원
2003년 벤 토레이 신부는 삼수령연수원의 원장으로 임명받았고, ‘네번째강’사역을 창설했다. 그의 꿈을 함께 나눈다.

“삼수령연수원은 북한 개방의 때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기관입니다. 네 번째강계획을 비롯, 예수원글로벌스쿨(Jesus Abbey Global School)과 삼수령청소년훈련원 본부가 들어서게 됩니다.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그에 걸맞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 예수원글로벌스쿨 : 2009년에 중고등학교를 개교할 예정이며, 통일한국을 향한 새 시대에 필요한 국내외 젊은 인재를 발굴, 교육함으로써 지도자의 자질을 개발함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 삼수령청소년수련원 : 품성 개발에 중점을 둔 청년들의 체력과 정신력, 사회성 개발을 위한 포괄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동시에 통일한국을 대비해 젊은이들을 준비시키고자 한다.
· 네번째강 계획 : 60년간의 분단이 남북한을 전혀 상반된 사상으로 갈라 놓았다. 남북한 간의 문화적, 사회적, 그리고 언어적인 차이가 긴 공백기간으로 인해 상호이해에 중대한 걸림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런 의미에서 네번째강 계획은 복음을 섬길 일꾼들을 준비시킴으로써 북한의 문호개방에 대비하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학교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가치를 들라.  (이사야 62장 10절)

“이번 세미나는 돌을 제거하고 길을 예비하는 과정의 역사적인 시작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통찰력을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전문 강사진들을 모았고, 이들을 통해 북한 사람들과 그 땅에 복음을 나누는 일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 좀 더 깊고 통합적인 방법을 이해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북한과 평양이 새롭게 부활될 영광스러운 날을 약속하셨습니다. 시간은 부족하고 과제는 시급합니다. 그날은 곧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는 준비돼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1기 북한학교가 2004년 7월 26일부터 28일까지 2박 3일 동안 강원도 태백 예수원에서 열렷다. 주제는 ‘길을 예비하라’(사 62:10)였다. 강의 주제와 강사진을 통해 북한학교가 지향하고 있는 목적과 목표를 분명하게 감지케 된다.

제1강 북한 사회의 기초적 이해(김병로)
제2강 북한 사회 재건에 대한 특별한 도전(벤 토레이)
제3강 북한 사람의 증언(홍순경)
제4강 통일과 하나님의 섭리(박상봉)
제5강 탈북자 사역과 북한선교(조용관)

한편 제2기 북한학교는 ‘북한 사람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2005년 2월 16일부터 19일까지 열렸으며, 제3기는 2005년 8월 8일부터 12일까지 ‘예수 이름없이 어떻게 예수를 전할까?’를 주제로 열렸다. 벤 토레이 신부의 통일을 향한 열망과 치밀한 준비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북한을 위한 첫 번째 준비는 한국교회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교단으로 통일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과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 터전 위에 북한을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심장과 눈으로 북한을 바라보면서 준비해야 합니다.”

노동학교
“동역자 여러분께 드립니다. 우리들이 북한의 문이 열리는 그 날을 위해 적극적인 방법들을 보다 깊이 연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인도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삼수령목장에서 함께 일하며, 제한된 시설을 더불어 함께 최대한 활용하는 훈련은 매우 중요한 일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삼수령 ‘네번째강’ 훈련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땀을 흘려 보시지 않겠습니까?”

토레이 신부의 부인 현재인 사모의 초대 말씀 가운데 한 대목이다. 외아들 벤 토레이 신부가 어머니의 말씀에 몇 마디 보탠다.

“‘기도는 노동이요, 노동은 기도’라는 말씀은 아버지 토레이 신부가 주창했던 구호입니다. 북한학교 노동캠프는 북한에 대한 이해와 앞으로 북한에 거주하며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직면하게 될 실제적인 상황에 대한 분별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캠프입니다. 따라서 육체적 노동훈련과 어려운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이 이 훈련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제1기 노동학교 훈련은 2006년 7월 10일(1차)부터 8월 18일(6차)까지 삼수령목장에서 이뤄졌다. 참가자는 청년, 대학생, 목회자, 선교사, 일반인, 영어권 등으로 다양했으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4박 5일 동안 이뤄졌다. 이수과목은 기도와 묵상, 노동, 강의, 예수원 방문 등이었으며, 마지막 날 성찬식을 마치고 해산하는 일정이었다. 또 제2기 노동학교는 2007년 7월 30일(1차)부터 8월 17 (3차)까지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한편 제3기 노동학교는 2008년 7월 28일(1차)부터 8월 15일(3차)까지 실시된다. 참가 희망자는 홈페이지(www.thefourthriver.org)를 참조하거나 전화(033-553-3395)로 문의하면 보다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예수원과 삼수령
“남북통일을 준비하는 삼수령연수원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활동을 위해선 연수원 건물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현재 저희가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가건물과 소를 키우고 있는 간이 우사(牛舍)가 전부입니다. 15만평에 달하는 삼수령목장은 아버지께서 생전에 가축을 사육하기 위해 행정 당국으로부터 임시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임차한 땅입니다. 저희는 이 목장 가운데 6만평의 대지 위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다목적 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해뜨는마을 단지(약 2천9백 평)
공동체마을 단지(약 1만6천 평)
무지개초지 단지(약 2만1천 평)
독립주택 단지(약 7천7백 평)

“이 모든 것을 위한 건축예산은 약 2백억 원이 소요됩니다. 당장 1차 공사를 위해서 태백시로부터 승인을 받아 내야 하는 건축허가에 필요한 예산은 약 20억 원 정도입니다. 삼수령센터 건축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적극적인 후원을 바랍니다.”

예수원 삼수령연수원 건립추진위원장 벤 토레이 신부의 이야기다. 다채로운 꿈을 펼치는 비전을 제시할 때 그의 음성은 확신에 차 있는 포효(咆哮)같은 그 무엇이었다. 그러나 센터를 건립하는 계획을 설명할 때 그의 유창한 한국어 속에 영어 표현이 더 많이 섞였고, 그의 목소리엔 바이브레이션(vibration)이 감지되었다. 역시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뭐니뭐니 해도 머니(money)가 문제’ 아니겠는가.
필자는 최근 예수원에 관한 목회학 박사학위 논문이 발표됐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던 바, 예수원 도서실에서 화제의 그 논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논문을 집필한 이광희 목사로부터 그 논문을 증정받게 되었다. 이 논문은 예수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한 내용을 포괄, A4 용지 총 1백8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2008학년도 장로회신학대학교 목회전문대학원에서 ‘예수원의 활성화를 위한 교육환경 분석 및 개선에 관한 연구’로 목회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광희 목사는 이 논문 가운데 다음과 같이 예수원을 진단하고 있다.

예수원은 강원도 산골짜기에 있는 수도공동체이다. 설립자이셨던 미국인 대천덕 신부의 독특한 설립사상의 강한 인상과 성령의 역사가 뜨거운 곳으로 알려지면서 한국의 많은 기독 지식인들과 특히 젊은 학생층에서 먼 길 마다 않고 찾아오는 신비한 영성체험의 장소로 유명하게 되었다. 그러나 설립자이신 대천덕 신부가 소천한 지 5년이 흐르면서 예수원은 겉으로는 느껴지지 않지만 속으로는 조용하게 어려움을 안고 지탱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부인할 수 없는 변화를 필요로 하는 모임을 몇 번 갖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광희 목사는 논문을 통해 다음과 같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예수원의 활성화를 위한 교육여건, 교육환경 분석 및 개선에 관한 방법으로 현황을 분석하였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예수원의 이상적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정하게 되었다. 첫째, 예수원의 과업인 삼수령연수원 건립문제, 둘째, 북한선교, 셋째, 정회원들의 전문인 훈련 및 사역자 훈련이다.

아울러 이광희 목사는 예수원과 삼수령의 관계 설정 및 예수원의 역할에 관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고 있다.
앞으로 삼수령연수원이 완공된 후에도 예수원은 삼수령연수원의 본부로서 삼수령연수원이 계획하나 모든 사역을 지탱하고 이끌어 가는 원동력을 줄 수 있는 이상적인 공동체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까지 변화해야 할 것이다.

축복있을지어다
삼수령 하산 길, 때마침 가느다란 봄비가 백두대간 태백산 자락을 촉촉히 적셔 주고 있었다. 봄비는 산자락에만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필자의 마음까지 흥건히 적셔 주는 것이었다. 그 빗줄기 속에 문든 떠오르는 기억 하나, 지난 연말 필자가 다섯 번째 평양을 방문했을 때, 대동강변에 세워진 이른바 ‘미 해적선 제너럴 셔먼호 격침 기념비’ 거대한 돌비석 아래 양지 쪽에서 해바라기를 하던 두 노인이 안내원의 제지를 받고 허겁지겁 자리를 뜨던 가녀린 뒷모습. 이름도 성도 알 길 없는 그 두 노인의 애잔한 뒷모습이 촉촉히 내리는 봄비에 젖어 하산하던 필자의 가슴속에 생생하게시리 기억되는 것이었다. 아, 이 일을 어쩌라는 말인가.
잊혀진 동토의 땅, 그 땅 거민을 위해 벽안의 사람들이 이 땅 태백산 깊은 골짜기를 찾아들어 대를 이어 낙토를 이루었고, 이제 백두대간을 통해 북녘 땅에까지 새 생명을 불어넣고자 거룩한 꿈을 꾸고 있음이여! 예수원을 지키고 있는 현재인 사모와 삼수령 벤 토레이 부부, 그리고 동역하는 모든 형제 자매들이여, 삼가 그대들에게 축복있을지어다. 아멘!


고무송 목사 [ 2008-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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