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령 센터(예수원)- 이 땅에 생수의 강물을 흐르게 하라!

대외 활동 +61

 

2009년 10월 1일 방송

 

http://www.cts.tv/prog/program/invitation/content.asp?PID=P636&DPID=95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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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환 목사와 김성윤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FEBC "만나고 싶은 사람 듣고 싶은 이야기" 방송입니다.
 
2009년 8월 21일 방송분입니다.

http://newfebc.febc.net/formation/formation.php?pid=1020&p_name=internet&internet_url=%2Fyaacast%2Fsub%2Fgesi.php%3Fcode%3Dinter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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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교회 - 특새 강의

- 제목 : 이 민족에 부흥을 주옵소서
- 본문 : 빌립보서 2:1~8
- 상영일자 : 2006년 4월 15일
- 영상주소 : http://tv.sarang.org/menu05/m5_06.asp?sflag=specia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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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편 한국을 사랑한 토레이家 사람들 - 벤 토레이 신부

고 대천덕 신부의 외아들 벤 토레이 신부.
현재 예수원에서 삼수령 프로젝트를 통해 북한선교와 통일후의
북한지역에 대한 비전을 품고 사역하고 있다.
살아있는 성자 대천덕 신부에 이어 토레이 신부에 이르기까지
4대가 한국을 위해 사역을 하고있으며.
아버지의 영향으로 오늘에 있기 까지 벤 토레이 신부의
아름답고 소박한 이야기.

상영일자 : 2007-02-16
영상주소 : http://www.cgntv.net/cgn_player/player.htm?vid=3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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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공동체인 강원도 태백의 예수원 삼수령연수원 벤 토레이(58) 본부장이 유엔의 세계식량계획(WFP) 식량조달팀 일원으로 활동하기 위해 지난 1일 중국을 통해 북한에 입국했다고 2일 예수원측이 밝혔다.

토레이 본부장은 12월13일까지 북한에 체류하며 식량 조달과 배분 모니터링 등의 활동을 전개한다.

이번 지원은 지난 5월 미 국무부가 북한에 향후 1년간 50만t의 식량을 지원하겠다는 발표 이후 나온 구체적 실행 방안으로 40만t은 UN 세계식량프로그램을 통해서 전달된다. 나머지 10만t은 미국내 5개 NGO 단체들을 통해서 북한에 공급된다.

토레이 본부장은 빌리그레이엄전도협회가 운영하는 구호단체 사마리탄퍼스(Samaritan's Purse) 관계자와 연결돼 이번 식량조달팀에 참가하게 됐다. 조달팀은 NGO 단체 중 한국 문화와 언어에 익숙한 자원 12명을 선발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에서 살며 북한 사역을 준비하는 토레이 신부가 적격자로 판단돼 선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수원 관계자는 "토레이 본부장의 방문으로 북한을 배우고 사랑을 나누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북한의 많은 사람에게 식량과 격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토레이 본부장은 북한 입국 전 기도편지를 통해 "식량조달 프로그램을 위해 기도해달라"며 "북한 주민을 위해 수시로 기도해달라"고 당부했다.

삼수령연수원은 예수원 공동체의 또 다른 사역의 하나로 남북한을 포함한 세계의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연구 훈련 노동 기도 및 공동생활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설립됐고 연구와 훈련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북한에 대해서는 '네 번째 강 프로젝트(The Fourth Project)'를 추진해 북한의 문호 개방에 대비하고 있다.

삼수령연수원은 남북한의 진정한 연합을 방해하는 사회적 문화적 영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자는 취지로 매년 북한학교를 개최해 북한 연구를 장려하고 지식의 상호 교환, 교육, 수련 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 2008-0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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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에 흐르는 네번째 강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내가 만난 남한 사람들은 통일의 노래를 열심히 부르면서 북한과의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한국인의 정체성은 어느 누구에게서든지 볼 수 있습니다. 개개의 한국인은 서로 다를 수도 있겠지만, 국가적으로는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단일민족입니다. ”

백두대간 삼수령에서 이른바 ‘네번째강 계획’ (The Fourth River Project)을 펼치고 있는 벤 토레이(Reuben G. Torrey) 추진본부장의 말이다. 그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하지만 북한과 남한은 물리적인 장벽뿐만 아니라 60여 년의 분단 세월에 의해 나뉘어져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열강에 의해 서로 다른 이념으로 같은 민족이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국가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분단국가입니다. 한국정부는 물론 종교계와 재계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안보와 경제 및 정치적인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므로 통일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연합을 방해하는 또 다른 차원의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영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이 있습니다. 저희들이 펼치고 있는 ‘네번째강계획’은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영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네번째강 계획(The Fourth River Project)
필자는 2008년 부활절에 그토록 거창한 우리 민족의 남북통일의 염원을 풀어내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으로 그 과업을 실천하고 있는 주인공을 만나고자 강원도 태백시 적각동 산 62번지에 자리를 잡고 있는 예수원의 삼수령연수원을 찾았다. 예수원 창립자 대천덕 신부가 30여 년 전 예수원으로부터 약 15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이곳 태백산 백두대간에 15만평을 임차해 ‘분수령목장’을 건립. 한우를 사육하며 이처럼 절묘한 지점에서 예수원의 삼수령 연수원을 세워 미래를 향한 다채로운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 현장을 지키며 새로운 사역에 몰입하고 있는 남북통일의 파수꾼 벤 토레이 부부를 만나고자 찾았던 것이다.

“삼수령연수원은 남북통일의 날을 기대하고 바라보며 북한개방의 때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기관입니다. 저희 기관은 ‘네번째강 계획’(The Fourth River Project)을 비롯, 예수원글로벌스쿨(Jesus Abbey Global School), 삼수령청소년수련원의 본부가 될 것입니다.”

삼수령연수원 추진본부장 벤 토레이 신부의 목소리는 확신에 가득 차 있다. 그의 이야기는 차라리 신앙고백이라 할 것이다.

“삼수령의 위치는 상징적인 의미와 함께 전략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먼저 상징적 의미로 말할 것 같으면, 삼수령연수원은 대한민국의 동해 쪽에 위치한 태백산맥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지점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동해, 서해, 그리고 남해로 흘러들어 가는 세 강줄기의 근원이 됩니다. 이것은 상징적으로 볼 때, 예수님께서 인간생명의 근원이 되는 것과 같이 이곳의 위치도 생명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추진본부장 벤 토레이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삼수령의 위치는 한반도의 길이와 거의 동일한 백두대간 위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두가지를 상징하는데, 그 하나는 생명의 강이 백두대간을 통해 북한으로 흘러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복음을 들고 북녘땅으로 가라는 부르심입니다. 이것이 바로 ‘네 번째 강’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네번째강 계획“에 대한 개념을 짐작하기에 이른다.

벤 토레이, 그는 누구인가
벤 토레이, 그는 예수원의 창설자인 토레이(Reuben Archer Torrey)신부의 외아들이다. 그를 보다 자세하게 알기 위해 그의 아버지 토레이 신부의 가계를 살펴본다.

예수원 창설자 토레이(대천덕)신부의 가계
부인 : 현재인(Jane Grey Torrey), 1921년 2월 4일생
아들 : 대영복(Reuben Grey Torrey), 1950년 2월 7일생
자부 : 임재영(Elizabeth Bushnell Torrey), 1954년 11월 16일생
장녀 : 대명자(Yancey Clare Torrey), 1963년 5월 5일생
차녀 : 대명숙(De Berniere Janet Torrey), 1966년 10월 29일생

위의 기록에서 파악되는 바, 벤 토레이는 올해 쉰여덟 살이고, ‘대영복’이라는 한국이름을 갖고 있는데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주로 ‘벤’(Ben)이라 호칭하고 있다. ‘벤’은 히브리어로 ‘아들’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므로 결국 ‘토레이의 아들’이라고 해석될 수 있겠다.
그의 아내는 올해 54세이며 ‘Elizabeth Bushnell Torrey’라는 긴 이름을 갖고 있는데, 주로 ‘리즈’(Liz)로 호칭되고 있다. 왕년의 할리우드 인기 스타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똑같은 이름인데, 그녀처럼 빼어난 미모를 갖추고 있다고 주변사람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아닙네다. 저는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입네다. 시집 안 간 달이 하나가 있긴 합니다만, 결혼한 아들에 손자까지 두었으니 어쩔 수 없이 할머니가 됐습네다. 다만 남편을 조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그이와 함께 나누고자 이곳 태백산 삼수령까지 동행했습네다. 요즘 저희 부부는 목장에서 신혼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다. 다만, 딸이 보고 싶은 것 빼고는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답네다.”

진짜 진짜 행복한 모습이다. 남편 벤이 자신의 사생활을 털어놓는다.

“저는 1950년 미국에서 태어났고,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1957년 11월 처음 한국에 왔습니다. 1969년 제가 19살 때 미국으로 영구 귀국할 때까지 한국은 저의 고향이었습니다. 그때 한국에서의 10대 시절이 참 좋았습니다. 중학교 시절엔 서울에서 친한 친구들과 아주 좋은 시간을 보냈고, 제가 열다섯 살 되던 1965년엔 아버지를 도와 예수원을 개척하는 일을 했습니다. 예수원 사역을 시작할 때, 아버지와 저, 그리고 10명의 남자 교인들과 큰 군용 텐트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모험이었지만, 제가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열심히 했었던 기억 때문인지 아주 즐거웠습니다.”

벤 토레이, 그가 한국에서 10대 시절을 보내는 동안 교육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었었는지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원에서 살고 있는 동안 저는 미국 시카고에 있는 한 학교와 통신 교육을 하면서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그 과정은 홈스쿨과 비슷한 것이었지만, 공부는 완전히 혼자서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보다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을 이곳저곳 여행할 수 있었으며, 예수원을 건립하는데 활발하게 참여해서 도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들은 나의 생애 가운데 아주 중요한 일이었으며, 그런 과정들을 통해 대학 과정을 포함한 성인으로서의 삶을 착실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벤 토레이 부인 리즈(Liz)
필자의 생각 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벤 토레이의 부인 리즈에 관한 것이었다. 남편이야 토레이 가문의 어쩔 수 없는, 이른바 ‘업보’로서 예수원의 사역을 감당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아내 리즈의 입장은 그와는 다르지 않겠는가 하는 의문이 맴도는 것이다. 더욱이나 아직 한국어로 소통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편임에랴.

“맞습네다. 우리네 서양 사람들은 동양 사람들과는 다를 수 있습네다. 남편이 하는 일이니까 아내는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고 봅네다. 저 또한 그렇게 하지 않았습네다. 제가 남편을 따라서 한국에 온 것은, 제가 좋아서 전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입네다. 그러기에 아직 한국어로 의사를 표시하는 데 서투르고 여러모로 불편한 것이 많지만, 제가 이곳 삼수령 산속에서 이렇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의사소통하는 일에 얼마나 답답할 것이며, 또 부족한 것들은 얼만나 많겠는가. 그러나 리즈는 전혀 불평이 없다. 아니, 만족이다. 지극히 행복한 모습인 것을 그녀의 얼굴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남편 벤이 보충 설명을 거들어 준다.

“아내 리즈와 결혼한 것은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현명한 결정 가운데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대학 동창인 리즈는 그 당시 대학교에서 열 명도 채 안 되는 크리스천 중 한 명이었고, 성경공주나 기독교 동아리 활동을 통해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지내느라 대학교에 늦게 들어간 저하곤 나이 차이가 네 살이나 나지만, 30년이 넘는 결혼생활 동안 아내는 저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최고의 비평가였습니다. 리즈와 저는 1979년부터 한동안 한국에 나와 살았고, 우리 부부의 첫 아들 르우벤은 1979년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2년 동안 한국에 있었는데, 그중 1년은 예수원에서 보내면서 할아버지와 아름다운 사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천국에 올라가 계시는 지금, 아내와 전 이곳 삼수령에서 살기 위해 2005년 한국에 돌아와 네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도 한국에 돌아와 정착할 날이 올 것입니다.”

가문의 영광
이 대목에서 필자는 벤 토레이 신부에게 마음속에 깊숙이 담아 두고 있던 어려운 질문을 털어 놓았다.

“벤 토레이 신부님, 어려운 질문 한 가지를 하고자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아버지 토레이 신부님은 한국에서 믿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성자로 존경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참으로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혹여 ‘가문의 영광’이 아드님에겐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하하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아버지 토레이 신부님은 한국교회와 신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셨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를 ‘성자’라고 칭송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질문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참말로 존경합니다. 자신을 희생하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셨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성령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사셨던 분입니다. 외아들인 저한테까지도 모든 것을 아버지를 기준으로 삼는 것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저 또한 성령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살 수 있었습니다.”

벤 토레이에게 있어 직업의 선택도 자유함이 있었다. 그는 1975년 사라로렌스대학을 졸업했고, 1979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의 컴퓨터 IT분야 그룹인 앤더슨컨설팅 회사에서 20여 년간 시스템 디자인과 개발 및 지식관리(knowledge management) 업무에 종사했다.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코네티컷주 볼턴시의 기독교 학교(The King's School) 행정책임자로 일했다.

“좀 미묘한 질문입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벤 토레이 신부님이 한국을 찾아와 예수원 사역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버지 토레이 신부님의 승계자로서 온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떻습니까? 너무 구체적인 질문 같습니다만, 명확한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고목사님께서 왜 이런 질문을 하시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 숙제 아니겠습니까? 사실, 아버지 장례식 때 많은 분들이 그런 제안을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예수원을 맡아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왜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만, 그 때 저로선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1957년 제가 일곱 살 때부터 예수원의 설립자인 토레이 신부의 외아들로서 한국에서 열아홉 상가지 10대 시절을 살았습니다만, 예수원은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주신 사역이지 저의 사역은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했기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미국에서 제가 좋아하는 IT분야에서 마음껏 활동하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 왔으며, 어떻게 해서 예수원 삼수령연수원 사역을 맡게 되었는지 솔직하게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어는 누구도 고목사님처럼 이렇게 솔직한 질문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실은 저와 아내는 무척 고민했습니다. 21세기가 열리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비전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특별한 꿈을 꾸게 해주셨습니다.”
어떤 말씀, 어떤 꿈, 어떤 비전인가? 그것은 창세기 2장 10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 에덴동산에서 발원하고 있는 네 개의 강 이야기였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세기 2장 10절~14절)

“옳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발원한 네 개의 강, 그 말씀 속에서 ‘네번째 강’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가 세운 이곳 삼수령이야말로 생명의 근원지인 에덴동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는 영감이 스쳤습니다. 고목사님, 저의 이와 같은 영감(靈感)이 나이든 영감(老人)의 헛된 생각은 아니지요? 지극히 성서적인 영감이죠?”

호탕한 웃음과 함께 꿈을 펼쳐 보이는 벤 토레이 신부의 어조는 감개무량(感慨無量)에 비장미(悲壯美)까지 서려 있는 그 무엇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강권적인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됐고, 찬양할 때마다 주체할 수 없으리만큼 눈물이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로 하여금 북한을 품고 기도하게 하셨고, 한반도의 통일을 대비하라는 새로운 비전을 보여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터를 잡아 놓은 삼수령에 깊은 뜻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이곳이 동해(五十川)와 남해(洛東江), 서해(漢江)로 물이 흘러들어 가는 절묘한 삼수(三水点)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는데, 이곳이야말로 태백산맥을 통해 북쪽으로 생명의 강이 흘러들어 가야 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곧 ‘네번째강 프로젝트’(The Fourth River Project)입니다.”

벤 토레이의 부인 리그 사모가 남편의 이야기에 설명을 곁들인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저한테도 남편과 똑같은 꿈을 꾸게 해주셨습네다. 처음에는 제가 왜 남편을 따라 한국에 가야 하는지 잘 몰랐습네다. 저는 한국말도 잘 못하는데, 북한 사투리까지 익히면서 북한을 돕는 사역을 제가 감당할 수 있을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네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이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는 사건이었습네다.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출발하는 말씀 말입네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세였더라.  (창세기 12장 1절, 4절)

“아브라함은 자녀가 없었으니까 조카를 데리고 갔습네다만, 저에게 아들 둘 아직 미혼인 달이 하나 있잖아요. 딸을 미국에 떼어 놓고 오는 것은 많은 힘든 일이었습네다. 지금도 딸 아이 생각만 하면 가슴이 짠하답네다.”

어느새 리즈 사모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지금은 여기 삼수령이 저의 고향처럼 느껴집네다. 아주 편안합네다. 별로 큰 도움은 못되지만 남편 곁에 있는 것이 좋고, 무엇보다 연로하신 어머님 곁에 있다는 사실이 고맙기만 하답네다.”

리즈 사모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분은 예수원 창설자 토레이 신부의 부인이요, 그러니까 그녀에겐 시어머니가 되는 현재인(Jane Grey Torrey) 사모를 가리킨다. 필자가 부활절 아침 예수원 식구들과 함께 나누었던 식탁에서 현재인 사모는 필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리즈는 꼭 한국사람 같습니다. 효녀 심청이처럼 아주 착한 딸이랍니다.”

현재인 사모는 올해 88세, 비록 보행이 활발한 편은 못되지만 장녀 대명자(Yancey Clare Torrey)의 지극정성과 정회원 엘리사벳의 도움으로 예수원의 모든 예배에 참석할 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예수원의 영적 어머니로서 변함이 없는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두 시간이 넘도록 현재인 사모와 특별대담을 갖기도 했다. 건강이 염려됐지만, 너끈하게 감당해 주었다. 토레이 신부가 떠난 자리가 어찌 허허롭지 않으리요만, 믿음으로 잘 견뎌내고 있는 사모, 그녀는 참으로 경외로운 모습이었다.
필자는 2박 3일 예수원에 머무는 동안 모든 모임과 부활절예배에 참석하면서 예수원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내심 토레이 신부가 떠난 예수원의 앞날을 염려하며 기도했다. 그분의 자리가 너무 크고, 어느 누구도 그 자리를 메울 수 없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것이 어찌 필자만의 생각이었을까?
그러나 예수원은 지극히 평온했으며, 고향처럼 포근했다. 예수원의 모든 사역은 집단지도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계속되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필자는 자신의 믿음 없음을 부끄러워해야 했고, 주님의 주 되심(Lordship)을 고백하며 몸과 마음과 정성을 함께 모으고 있는 예수원 정회원들의 지도력에 감사하며 주께 찬양을 올려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할렐루야!

예수원의 삼수령연수원
2003년 벤 토레이 신부는 삼수령연수원의 원장으로 임명받았고, ‘네번째강’사역을 창설했다. 그의 꿈을 함께 나눈다.

“삼수령연수원은 북한 개방의 때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기관입니다. 네 번째강계획을 비롯, 예수원글로벌스쿨(Jesus Abbey Global School)과 삼수령청소년훈련원 본부가 들어서게 됩니다.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그에 걸맞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 예수원글로벌스쿨 : 2009년에 중고등학교를 개교할 예정이며, 통일한국을 향한 새 시대에 필요한 국내외 젊은 인재를 발굴, 교육함으로써 지도자의 자질을 개발함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 삼수령청소년수련원 : 품성 개발에 중점을 둔 청년들의 체력과 정신력, 사회성 개발을 위한 포괄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동시에 통일한국을 대비해 젊은이들을 준비시키고자 한다.
· 네번째강 계획 : 60년간의 분단이 남북한을 전혀 상반된 사상으로 갈라 놓았다. 남북한 간의 문화적, 사회적, 그리고 언어적인 차이가 긴 공백기간으로 인해 상호이해에 중대한 걸림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런 의미에서 네번째강 계획은 복음을 섬길 일꾼들을 준비시킴으로써 북한의 문호개방에 대비하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학교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가치를 들라.  (이사야 62장 10절)

“이번 세미나는 돌을 제거하고 길을 예비하는 과정의 역사적인 시작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통찰력을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전문 강사진들을 모았고, 이들을 통해 북한 사람들과 그 땅에 복음을 나누는 일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 좀 더 깊고 통합적인 방법을 이해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북한과 평양이 새롭게 부활될 영광스러운 날을 약속하셨습니다. 시간은 부족하고 과제는 시급합니다. 그날은 곧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는 준비돼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1기 북한학교가 2004년 7월 26일부터 28일까지 2박 3일 동안 강원도 태백 예수원에서 열렷다. 주제는 ‘길을 예비하라’(사 62:10)였다. 강의 주제와 강사진을 통해 북한학교가 지향하고 있는 목적과 목표를 분명하게 감지케 된다.

제1강 북한 사회의 기초적 이해(김병로)
제2강 북한 사회 재건에 대한 특별한 도전(벤 토레이)
제3강 북한 사람의 증언(홍순경)
제4강 통일과 하나님의 섭리(박상봉)
제5강 탈북자 사역과 북한선교(조용관)

한편 제2기 북한학교는 ‘북한 사람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2005년 2월 16일부터 19일까지 열렸으며, 제3기는 2005년 8월 8일부터 12일까지 ‘예수 이름없이 어떻게 예수를 전할까?’를 주제로 열렸다. 벤 토레이 신부의 통일을 향한 열망과 치밀한 준비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북한을 위한 첫 번째 준비는 한국교회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교단으로 통일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과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 터전 위에 북한을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심장과 눈으로 북한을 바라보면서 준비해야 합니다.”

노동학교
“동역자 여러분께 드립니다. 우리들이 북한의 문이 열리는 그 날을 위해 적극적인 방법들을 보다 깊이 연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인도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삼수령목장에서 함께 일하며, 제한된 시설을 더불어 함께 최대한 활용하는 훈련은 매우 중요한 일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삼수령 ‘네번째강’ 훈련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땀을 흘려 보시지 않겠습니까?”

토레이 신부의 부인 현재인 사모의 초대 말씀 가운데 한 대목이다. 외아들 벤 토레이 신부가 어머니의 말씀에 몇 마디 보탠다.

“‘기도는 노동이요, 노동은 기도’라는 말씀은 아버지 토레이 신부가 주창했던 구호입니다. 북한학교 노동캠프는 북한에 대한 이해와 앞으로 북한에 거주하며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직면하게 될 실제적인 상황에 대한 분별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캠프입니다. 따라서 육체적 노동훈련과 어려운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이 이 훈련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제1기 노동학교 훈련은 2006년 7월 10일(1차)부터 8월 18일(6차)까지 삼수령목장에서 이뤄졌다. 참가자는 청년, 대학생, 목회자, 선교사, 일반인, 영어권 등으로 다양했으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4박 5일 동안 이뤄졌다. 이수과목은 기도와 묵상, 노동, 강의, 예수원 방문 등이었으며, 마지막 날 성찬식을 마치고 해산하는 일정이었다. 또 제2기 노동학교는 2007년 7월 30일(1차)부터 8월 17 (3차)까지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한편 제3기 노동학교는 2008년 7월 28일(1차)부터 8월 15일(3차)까지 실시된다. 참가 희망자는 홈페이지(www.thefourthriver.org)를 참조하거나 전화(033-553-3395)로 문의하면 보다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예수원과 삼수령
“남북통일을 준비하는 삼수령연수원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활동을 위해선 연수원 건물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현재 저희가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가건물과 소를 키우고 있는 간이 우사(牛舍)가 전부입니다. 15만평에 달하는 삼수령목장은 아버지께서 생전에 가축을 사육하기 위해 행정 당국으로부터 임시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임차한 땅입니다. 저희는 이 목장 가운데 6만평의 대지 위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다목적 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해뜨는마을 단지(약 2천9백 평)
공동체마을 단지(약 1만6천 평)
무지개초지 단지(약 2만1천 평)
독립주택 단지(약 7천7백 평)

“이 모든 것을 위한 건축예산은 약 2백억 원이 소요됩니다. 당장 1차 공사를 위해서 태백시로부터 승인을 받아 내야 하는 건축허가에 필요한 예산은 약 20억 원 정도입니다. 삼수령센터 건축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적극적인 후원을 바랍니다.”

예수원 삼수령연수원 건립추진위원장 벤 토레이 신부의 이야기다. 다채로운 꿈을 펼치는 비전을 제시할 때 그의 음성은 확신에 차 있는 포효(咆哮)같은 그 무엇이었다. 그러나 센터를 건립하는 계획을 설명할 때 그의 유창한 한국어 속에 영어 표현이 더 많이 섞였고, 그의 목소리엔 바이브레이션(vibration)이 감지되었다. 역시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뭐니뭐니 해도 머니(money)가 문제’ 아니겠는가.
필자는 최근 예수원에 관한 목회학 박사학위 논문이 발표됐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던 바, 예수원 도서실에서 화제의 그 논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논문을 집필한 이광희 목사로부터 그 논문을 증정받게 되었다. 이 논문은 예수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한 내용을 포괄, A4 용지 총 1백8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2008학년도 장로회신학대학교 목회전문대학원에서 ‘예수원의 활성화를 위한 교육환경 분석 및 개선에 관한 연구’로 목회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광희 목사는 이 논문 가운데 다음과 같이 예수원을 진단하고 있다.

예수원은 강원도 산골짜기에 있는 수도공동체이다. 설립자이셨던 미국인 대천덕 신부의 독특한 설립사상의 강한 인상과 성령의 역사가 뜨거운 곳으로 알려지면서 한국의 많은 기독 지식인들과 특히 젊은 학생층에서 먼 길 마다 않고 찾아오는 신비한 영성체험의 장소로 유명하게 되었다. 그러나 설립자이신 대천덕 신부가 소천한 지 5년이 흐르면서 예수원은 겉으로는 느껴지지 않지만 속으로는 조용하게 어려움을 안고 지탱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부인할 수 없는 변화를 필요로 하는 모임을 몇 번 갖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광희 목사는 논문을 통해 다음과 같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예수원의 활성화를 위한 교육여건, 교육환경 분석 및 개선에 관한 방법으로 현황을 분석하였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예수원의 이상적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정하게 되었다. 첫째, 예수원의 과업인 삼수령연수원 건립문제, 둘째, 북한선교, 셋째, 정회원들의 전문인 훈련 및 사역자 훈련이다.

아울러 이광희 목사는 예수원과 삼수령의 관계 설정 및 예수원의 역할에 관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고 있다.
앞으로 삼수령연수원이 완공된 후에도 예수원은 삼수령연수원의 본부로서 삼수령연수원이 계획하나 모든 사역을 지탱하고 이끌어 가는 원동력을 줄 수 있는 이상적인 공동체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까지 변화해야 할 것이다.

축복있을지어다
삼수령 하산 길, 때마침 가느다란 봄비가 백두대간 태백산 자락을 촉촉히 적셔 주고 있었다. 봄비는 산자락에만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필자의 마음까지 흥건히 적셔 주는 것이었다. 그 빗줄기 속에 문든 떠오르는 기억 하나, 지난 연말 필자가 다섯 번째 평양을 방문했을 때, 대동강변에 세워진 이른바 ‘미 해적선 제너럴 셔먼호 격침 기념비’ 거대한 돌비석 아래 양지 쪽에서 해바라기를 하던 두 노인이 안내원의 제지를 받고 허겁지겁 자리를 뜨던 가녀린 뒷모습. 이름도 성도 알 길 없는 그 두 노인의 애잔한 뒷모습이 촉촉히 내리는 봄비에 젖어 하산하던 필자의 가슴속에 생생하게시리 기억되는 것이었다. 아, 이 일을 어쩌라는 말인가.
잊혀진 동토의 땅, 그 땅 거민을 위해 벽안의 사람들이 이 땅 태백산 깊은 골짜기를 찾아들어 대를 이어 낙토를 이루었고, 이제 백두대간을 통해 북녘 땅에까지 새 생명을 불어넣고자 거룩한 꿈을 꾸고 있음이여! 예수원을 지키고 있는 현재인 사모와 삼수령 벤 토레이 부부, 그리고 동역하는 모든 형제 자매들이여, 삼가 그대들에게 축복있을지어다. 아멘!


고무송 목사 [ 2008-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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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곧 열릴 것이다. 이미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개성에 진출한 남한 회사들은 북한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고 평양과 나진 선봉 지구에서는 북미의 회사들이 일하고 있다. 미국 기독교 단체들은 북한의 여러 지역에 인도주의적 도움을 제공하고 그들은 북한 곳곳을 다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상황이 변하고 있다. 어쩌면 예기치 못하게 큰 변화가 올 가능성이 높다.

교회는 이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가 준비만 잘 갖추면 북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신생 국가의 법적 경제적 사회적 토대를 성경 원칙에 따라 만들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바른 태도를 지닌 헌신적 그리스도인들이 국가의 재건에 부름받을 다양한 정부 기관들과 비정부기구들 속에 들어가야 한다.

또한 북한의 문화 역사 세계관 이데올로기 등 북한 전반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갖춘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그러한 남녀들이 적절한 훈련을 받아 채비를 갖추고 있다가 소명이 올 때 곧바로 이에 응하기를 바라고 계신다.

특히 북한이 열릴 때를 대비해 우리는 10∼15명 단위의 그룹들을 조직해야 한다. 각 그룹은 준비를 갖추고 있다가 북한으로 들어가 어느 지역에 정착한 후 낡은 건물을 수리하고 이웃을 도우며 기독교 공동체의 모델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들이 성령의 은혜로 함께 살면서 예배의 기쁨과 사랑의 삶을 보여주는 한편 다른 사람들을 돌본다면 북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이런 삶의 모델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전도 방법이다.

북한에 진출할 각 그룹 안에는 다양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뿐 아니라 가게 점원 일이나 소규모 자영업을 해본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 또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신체 건강한 젊은 남녀들도 필요할 것이다. 남한의 교회들이 이런 그룹들을 조직했다가 문이 열릴 때 그들을 북한에 보낸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역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북한에 새로운 토착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기도 하다. 북한 사람들이 이 그룹 안으로 들어오면서 준비가 갖추어지면 그들 스스로 교회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북한으로 보낼 그룹들을 조직하고 후원하고 준비시켜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가슴과 마음을 합해 함께 모여야 한다. 단일 조직체를 만드는 것은 불필요하다. 필요한 것은 모든 교회들과 관련 단체들이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하며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며 회개와 용서 가운데 화해를 구해야 한다.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협력하면서 위대한 역사를 진척시켜야 한다. 아들의 희생과 성령의 권능으로 나타난 하나님 사랑, 그 사랑을 북한으로 가져가는 위대한 역사 말이다.

벤 토레이(예수원 삼수령 수련원장)

 
[2007-0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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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 ‘삼수령목장’서 북한선교사 양성 벤 토레이 신부

삼수령(三水嶺). 강원 정선군에서 태백시내로 넘어가는 해발 920m의 험준한 고개. 대관령(832m)보다 높다. 서해로 흐르는 한강, 남해로 흐르는 낙동강, 동해에 합수되는 오십천의 발원지로 빗물이 분수(分水)돼 ‘삼수(三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삼수령 정상에서 다시 가파른 샛길로 힘겹게 오르자 ‘삼수령 목장’이 나타나고 청바지에 잠바 차림의 벽안(碧眼)의 한 신부가 기자를 맞는다. 벤 토레이(대영복·57·사진) 신부.

그는 1965년 태백에 영성공동체인 ‘예수원’을 설립해 활동하다 2002년 세상을 뜬 성공회 대천덕 신부의 아들이다.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한국 땅에서 선교활동을 펴고 있는 셈이다.

토레이 신부는 ‘북한 선교’를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다. 매봉산 자락의 1000m 가파른 고지에 약간의 터를 골라 지은 조립식 사무실 책장에는 북한 관련 책이 빽빽이 들어차있다.

북한 선교를 준비하는 신부가 왜 행인 하나 만나기 어려운 산골에 터를 잡았을까.

“북한 개방 이후를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넉넉하기만 한 토레이 신부의 답변은 이 대목에서만큼은 분명하다. “한국 사람들은 북한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남한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서양 사람이 북한 사람과 대화가 잘될 것입니다.”

그는 ‘준비’를 위해 구체적으로 일을 벌이고 있다. 아버지가 청소년수련원 터로 산림청에 임대했던 15만 평의 구릉지에 공동체 마을을 건설하고 북한 선교의 뜻을 지닌 사람들을 모아 교육과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정신과 문화, 언어 차이 등을 이해하지 못하면 개방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그동안 김매기와 가축 돌보기 등 노동체험과 북한에 대한 강의 및 연구, 기도를 함께하는 ‘노동학교’를 거의 매년 개설해 왔다.

그런데 왜 하필 북한일까. “2002년 부친이 돌아가셔서 한국에 왔을 때 한 집사님이 저에게 ‘에덴동산에는 강이 4개가 흐르는데 삼수령에는 강이 3개만 발원된다’고 얘기하시더군요. 그래서 ‘4번째 강이 필요하군요. 북쪽으로 흐르는 생명의 강요’라고 말했어요. 북한에 대해 이전에는 생각해 본 적도 전혀 없었는데요….”

그래서 그가 이름 붙인 것이 ‘네 번째 강 계획’. 북한의 현실을 공부하고, 청소년들이 자연을 맘껏 체험하며 미래에 대한 비전을 키우고, 영성을 갖춘 선교 전문가를 양성할 계획이다.

토레이 신부가 하는 일은 아버지 대천덕 신부가 그랬듯 초교파적이다. 토레이 신부는 예수의 사도 중 한 사람인 도마가 인도를 중심으로 선교한 데서 유래한 동방교회 계열 소속이다. 할아버지는 1912년 중국으로 건너가 40여 년간 중국 선교에 투신한 장로교 선교사였고, 아버지는 성공회 신부였으며, 아들은 가톨릭 신자다.

다른 선교공동체에서 5년간 살다 이곳에 옮겨와 7년째 소를 돌보며 살고 있는 배엘론(36) 씨는 “저도 북한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기 와 공부해 보니 모르는 것이 너무 많더군요”라고 말했다.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준비도 하기 전에 북한이 개방되면 안 되는데….” 토레이 신부가 껄껄껄 웃었다.

태백=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 2007-0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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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교회가 북한에 들어가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겸손하며 정직하고 성결한 교회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된 남한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을 보고 북한 주민들은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원의 벤 토레이(57) 신부가 10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트랜스포메이션(변혁) 2007 대회에서 북한의 복음화를 준비하고 있는 한국교회에 따끔한 한 마디의 충고를 했다.

토레이 신부는 강원도 태백시 예수원의 원장이었던 대천덕 신부(작고)의 아들로 지난해부터 한국에 머물며 북한 복음화를 위한 ‘삼수령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그는 이날 대회에 참석한 8000여 청중에게 북한의 문이 열리기 전에 한국교회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토레이 신부는 “교회가 북한내에도 수많은 교단과 교파에 따른 분열된 교회를 세울 것인가”고 반문하면서 “우리가 하나가 되지 못한 채 북한에 들어간다면 북한 주민들은 일치와 화해의 주님을 보기보다는 서로 이간질하고 싸우는 크리스천들의 모습만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토레이 신부는 “북한 선교를 위해서 조직을 만들고 모금하는 등 많은 것들을 준비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하나된 심령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면서 “북한 복음화를 위한 최고의 준비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토레이 신부는 시편(5:6,7)과 잠언(6:16,17) 등 성경 말씀을 언급하면서 교회는 먼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일들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교회는 교만하고 불의하며 정직하지 못한 것 등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들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해야 한다.

교회가 낮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의 발을 씻기는 일을 할 때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여러분은 교회 안에서의 낙태율과 사회에서의 낙태율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라면서 “우리의 불의했던 것들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며 회개하자”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은 남과 북이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신다”면서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고 남북이 하나되는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깜짝 놀라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이라고 언급했다.

토레이 신부는 “하나님은 북한을 새롭게 재건하기를 원하시며 우리는 그분의 선한 도구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도록 기도해야 한다”면서 “잿빛 평양이 세상에 기쁨을 주는 평화의 도시가 될 때까지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자”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레이 신부는 눈시울을 적시며 “미국인으로서 과거 한국에 대해서 수 차례 죄악된 행동을 저질렀음을 마음 깊이 회개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하나님이 나를 한국에 보내신 것은 미국의 죄를 고백하며 한국민으로부터 용서를 받기 위함”이라면서 용서를 구했다.

이에 홍정식(새서울교회) 황성주(꿈이있는교회) 김혜자(영동제일교회) 목사는 “주님의 사랑으로 미국의 형제와 자매들을 용서한다”면서 청중에게 “미국이 그동안 우리를 위해서 해줬던 수많은 선한 일들을 잊지말고 감사하자”고 말했다.

글·사진=이태형 전문기자 thlee@kmib.co.kr [ 2007-1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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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uben Torrey IV 한국 정착한 삼수령 연수원 원장 벤토레이 신부부부

벤토레이(Reuben Torrey IV, 55세) 신부와 엘리자베스(51세) 사모가 지난 10월 3일 한국에 안착했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삼수령 목장에 올라 삼수점 (三水點)에 서서 북쪽을 향해 팔을 뻗으며 " 이제 곧 생수의 강이 흐를 것" 이라고 선언했다.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의심하지 않는 그는 그의 부르심과 앞으로 북한에 일어나게 될 놀라운 일들이 전부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라고 선포한다. 그의 아내와 함께 삼수령에 오른 토레이 신부는 동서남북으로 뻗은 산맥들과 멀리 동해를 바라보며 마치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다고 술회했다.
북한 백성의 길을 예비하러 왔습니다.

[ 집에 돌아오다 ]

벤토레이(55세) 신부와 엘리자베스(51세) 사모가 미국생활을 접고 한국에 완전히 귀국하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았다. 예수원 설립자 故대천덕 신부의 장남으로 7세때인 1957년 한국에 와 어러셔부터 아버지의 사역을 보며 성장했던 토레이 신부였지만 정작 그는 아버지를 이어 예수원 사역을 하지 않았다.예수원은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주신 사역이지 자신의 사역은 아니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미국에 돌아가 컴퓨터 IT분야 그룹인 앤더슨컨설팅사에서 20년간 근무했다. 그는 또 기독교학교인 킹스스쿨 (The King's School)에서 교장과 이사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사모는 토레이 신부와 결혼하고 지난 1978년부터 1년간 예수원에 생활도 했고, 큰아들 르우벤 에드워드를 한국에서 출산하기도 했다. 또 故대천덕 신부와 현재인 사모의 결혼 50주년에도 한국에 왔었다. 하지만 그때는 방문이었고 지금은 아예 살러왔다. " 모든것이 집에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언어만 빼고요(웃음) 고향에 있는 것처럼 편안합니다. 토레이 신부도 도착해서 예수원회원들과 찬양예배 모임에 참석했는데, 집에 돌아온 것처럼 편안했다고 감격해 했다.


[ 삼수령 사역으로의 부름심 ]

한국에 들어오기로 결정하고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가깝게 지내던 지우들과 사랑하는 자녀들과 헤어지는 일이었다. 막내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을 보고 떠나왔는데, 결혼한 두 아들은 기뻐했지만 딸은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단다. " 그들은 우리 분신이예요. 많이 보고 싶어요 " 하며 잠시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보이던 엘리자베스 사모는 " 다행히도 전화오 이메일로 자주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되요" 했다.

3년전 토레이 신부는 어미니 친구로부터 전해들은 창세기 2장 10절 말씀인 "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를 읽고 예수원 목장이 있던 삼수령(三水嶺)을 기억해 냈다. 동해와 한강, 낙동강의 발원지인 이곳에서 북으로 흐르는 네 번째 강이 필요하다는 비전을 얻은 것이다.

그로부터 강권적인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며 기도할 때마다 , 찬양할 때마다 이상하게 북한이 생각났고 눈물이 났다. 그렇게 '주님의 비전'을 받은 그는 지난 3년 동안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네번째강 프로젝트'를 위해 선교사, 교회, 한인2세, 대학과 선교단체, 인권단체 등과 접촉해왔다. 최근에는 미국자마 (ZAMA : Jesus Awakcening Movement for America)에서 북한학교를 열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북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

엘리자베스 사모 역시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오게 되면서 지난 1월부터 자신이 왜 한국에 가야 하는지를 놓고 기도했다. " 저는 한국말도 못하고 한국인도 아닌데 왜 벤과 제가 북한사역을 위해 한국에 가야하는지 기도했어요. 하나님은 몇가지 다른 방법으로 말씀해 주셨는데, 그중 제가 북한 사람들이 만난 첫번째 서구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이 일에 하나님이 어떤 특권을 주셨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

옆에서 엘리자베스 사모의 말을 듣고 있던 토레이 신부가 설명을 덧붙였다.
" 지난 1월 북한학교 2기를 하고 있을때 탈북자 6명이 참가했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계속 나를 좀 이상하게 쳐다보더라구요. 나중에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니, 그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양 사람을 봤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미국 사람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대요. 나중에 미국인과 결혼하고 싶다고도 하더군요 (웃음)"

엘리자베스 사모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 남편의 말을 듣고 큰 위안을 얻었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실 때 우리 존재 자체를 원하시지, 우리 쪽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를 요구하지 않으세요. 사실 제가 여기 있는 것도 그저 저란 존재를 하나님이 원하셨기에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죠. " 그래도 낯선 한국 땅에서 그것도 산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안쓰러워 정말 괜챦냐고 묻자 엘리자베스 사모는 "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전 괜찮습니다" 하며 밝게 웃었다.

이들 부부는 선교사 가정이라는 '가문의 영과'을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부담감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다. " 저는 벤과 결혼했지, 가족과 결혼한 것이 아니거든요 (웃음) 한국에 온 것도 벤과 저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결정한 것이지, 토레이 가문때문에 결정한 것은 아닙니다. "

엘리자베스 사모의 말에 토레이 신부도 거든다
" 무엇보다 토레이 가족에겐 자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에 대해 각자 반응할 자유가 있습니다. "



[ 복음이 북한을 덮는 날을 소망하며 ]

현재 삼수령 연수원 목장에는 15마리 소가 자라고 있다. 건강한 누렁이 한우들인데 잘 키워서 북한에 보낼거란다. 2004년 10월 8마리 송아지로 시작하여 올 10월까지 7마리의 어미소가 목장의 새가족이 되엇다. 이들은 이곳 목장에서 배우고 다듬어진 축산과 영농기술을 피폐해진 북한에 전하고자 한다. 백두대간을 타고 생명의 물줄기를 전달하는 통로에 걸쳐진 목장, 한강과 낙동강, 오십천을 따라 세상을 향한 생수의 강이 흐르는 곳에 목장이 위치한 것이다. 또 북한학교를 통해 북한 사역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있다. 지난해 여름 북한학교 1기를 시작으로 올 여름까지 3기를 마쳤다. 북한의 사회와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예수이름없이 예수를 전할 수 있는 방법까지 공부했다. 미국에서도 2기 북한학교를 내년 1월에 진행 할 계획이다.

내년 여름 (7.8월)에는 북한학교와 노동학교도 열 계획이다. 40~50명의 사람들이 천막에서 함께 지내면서 오전에는 노동을 하고 오후에는 강의를 득는 프로그램이다. 또 부한연구소를 만들어 한국 교회에 북한을 알리는 한편 오는 11월 중에는 북한을 위한 기도모임도 가질 계획이다.

무엇보다 연수원 부지의 허가를 얻는 것이 삼수령 연수원의 가장 큰 숙제이며 기도제목이다. 허가를 받아야 기금 마련도 하고 건물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토레이 신부는 북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기쁘게 바라본다. 한국과 미국부의 관심, 북한의 인권문제를 주의 깊게 바라보는 사람들, 복음주의자의 눈 , 기업하는 사람의 눈 등을 보면서 한가지 확신이 그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다.

" 저는 이 모든 관심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이 모든것이 북한이 복음을 듣기를, 새 나라를 세우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믿습니다. 삼수령 연수원의 역할은 이사야 62장 10절 말씀처럼 백성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평양을 찬양하게 되는 날이 올겁니다. "

토레이 신부는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주권적 손길이 있음을 믿기에 부시 행정부나 한국정부가 갖는 북한관에 대해 일체의 말을 삼간다. 그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역사뒤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이다. 그 하나님이 홀로 이 모든일을 주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이 북한을 향해 갖고 계신 계획이란 무엇일까. 토레이 신부는 조심스럽지만 강한 확신으로 이렇게 말한다.

" 북한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면 다시 한번 예수를 위해 온 세상에 나가게 될 겁니다. 그들은 웬만한 고생을 당해도 끄덕 없을 겁니다. 언젠가는 북한 크리스천들이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할 날이 올겁니다. 분명히 북한 크리스천들에게 특별한 사명이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들의 고난과 박해는 값진것이며 선교사역에 큰 역할을 감당할 것입니다. "


[ 하찮은 것도 하나님께 소중하다 ]

토레이 신부는 기도제목을 나누며 기도를 부탁했다.
첫째. 이 모든 일에 압도되어 지치치 않기를 둘째. 예수원과 목장식구들  그리고 북한 사역을 위해 부름 받은 모든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기를 셋째. 삼수령 부지 허가와 모금활동에 차질이 없기를, 그리고 엘리자베스 사모가 빨리 한국어를 습득할 수 있기를

도착하는 날, 토레이 신부의 어머니인 현재인 사모는 더 필요한 물품은 없는지 어머니로서 꼼꼼히 살펴줬다.세탁기 사용하는 방법을 익히는데 3시간이 걸렸다는 엘리자베스 사모는 26년 전에는 손빨래를 했었다며 오히려 기뻐했다. 선교사가 아닌 '하나님의 일꾼'으로 불리고 싶다는 이들은 하나님이 놀랍게 창조하신 자연의 하나인 삼수령 목장에서 그분이 하신일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우리가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지를 날마다 일깨우며 살고 있다. 들꼿 한 송이, 길가의 돌 하나, 밭을 일구는 농부들의 작은 수고가 얼마나 귀중한지 잘 알기에 작은 일, 짧은 시간도 허투루 여기지 않는다. 그들이 한국땅에 평안히 정착하기를 기도한다.

신상목기자 [ 200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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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원이 다음 ‘시즌’을 맞았다. 40여 년간 대천덕 신부님을 통하여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이라’는 선언 아래 한국인들의 영성의 고향이었던 예수원이 다음 세대인 벤 토레이 신부님과 함께 북한을 위해 길을 예비하는 곳으로 변모되어 가고 있다.

작년 여름 즈음, 북한에 대한 무지함에 답답해 하던 나는 예수원에서 북한학교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별다른 고민 없이 곧바로 예수원이 있는 태백으로 향했다. 한국의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그러하듯 나에게도 예수원은 고향과 같은 곳이기에 강사진이나 스케줄을 굳이 살피지 않아도 믿고 갈 수 있었다. 돌아가신 대천덕 신부님의 자취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그 여정은 충분히 가치 있으리라.

북한에 대해 배우려고 갔던 북한학교에서 대천덕 신부님의 아들 벤 신부님을 만나게 되었고 삼수령과 네번째강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 민족을 위한 중보기도의 집이었던 예수원이 다음 ‘시즌’을 맞이하고 있었다. 40여 년간 쌓여온 기도와 헌신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괸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대 신부님께서 돌아가시자 다음 세대가 일어나고 있고, 그 방향이 북한이라는 것은 나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다음 세대를 일으키고 계신다는 말씀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벤 신부님의 외모에서는 대 신부님을 찾기 어려웠지만 예수원에서 방석을 직접 나르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를 닮은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었다. 그 이후 북한학교를 마친 학생들을 주축으로 하는 ‘준비된 백성’이라는 기도모임을 통해 매달 벤 토레이 신부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만날 때마다 대화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움과 겸손함은 예수원이라는 공간이 주는 느낌 그대로였다. 대를 이어 한국을 사랑하는 이 토레이 가문의 헌신과 섬김이 네 번째 강이 되어 북한으로 흘러가게 될 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첫 번째 강 - 나의 부르심 삼수령
예수원에 다음 ‘시즌’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40년간의 기도와 헌신이 쌓여있다가 이제 어딘가로 흘러가려고 한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시게 된 특별한 계기와 삼수령 네번째강 프로젝트에 대해 나눠주세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 없었어요. 미국에서 할 일이 있었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예수원과 관련해서 일할 것을 말씀하셨지만 저는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9월과 10월 즈음에 북한에 대한 큰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북한을 생각하면 그냥 눈물이 났습니다. 집사람과 함께 기도하고 상의하면서 북한을 위해 특별히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 때 강하게 알게 된 것은 얼마 안으로 북한의 문이 열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죠.

예수원이 있는 태백 삼수령은 동쪽, 서쪽, 남쪽으로 흐르는 강이 시작하는 곳이에요. 그래서 삼수령(三水嶺)입니다. 저는 어느 날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라는 창세기 2장 10절의 말씀을 묵상하는데 삼수령이 생각났습니다. 네 번째 생수의 강이 바로 북쪽을 향해 흘러가야 하는 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삼수령에서 바로 그 일을 위해 사람들을 준비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2003년 1월, 4월에 예수원을 방문하고 예수원 식구들에게 이 비전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삼수령에는 30년 전부터 예수원이 임대해서 청소년 수련원을 세우려고 했던 땅이 있었어요. 그 곳에 북한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을 훈련해야 한다는 비전을 받았습니다. 정부에서 지난 5월 12일에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 삼수령에 북한으로 생수를 들고 갈 사람들을 훈련하는 훈련원을 세우는 것이 저의 비전입니다. 북한을 향해 네 번째 강이 흘러가 마른 땅을 적실 수 있도록 준비할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작년 12월에 한국에 가족들과 함께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아주 작은 한 걸음씩 걸어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곧 열리는 북한학교, 매달 서울에서 열리는 ‘준비된 백서’ 기도모임, 예수원 노동학교 같은 과정들이 북한에 생수를 나를 사람들을 훈련하기 위한 작은 시도들입니다.

두 번째 강 - 나의 아버지 대천덕 신부
대천덕 신부님은 한국 크리스천들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십니다. 한국의 많은 영적 리더들이 가장 영향 받은 사람으로 대 신부님을 꼽는데요. 벤 신부님께는 어떤 아버지셨는지 무척 궁금하네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면 나눠주셔도 좋습니다.

친한 친구, 서로에게 특별한 친구였습니다. 한 가지 기억하는 것은 아버지가 서울에서 성공회 신학원 원장으로 계실 때, 아마 63년쯤 됐을 거예요. 제가 아마 13살이었는지 14살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그 때 신학원에 도둑이 많았어요. 그래서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밤마다 돌아다니면서 지키는 것이었죠. 매주 금요일마다 아버지랑 저는 함께 학교로 갔어요. 도둑을 지키는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걸어 다니면서 대화했어요. 많은 것을 아버지로부터 배우는 시간이었어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낼 줄을 몰랐어요. 얘기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집에 돌아와서 백과사전을 찾으며 함께 공부하기도 했죠. 몇 달 동안 아버지와 그렇게 밤마다 대화했어요. 너무 귀한 추억이죠.

아버지에게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온전한 순종, 순종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배웠죠. 아버지는 제가 아버지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길 원하지 않았어요. 제가 하나님의 뜻을 직접 알고 그대로 순종하기 원하셨죠.

아버지는 80세 되던 때부터 북한에 대한 큰 부담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살아있는 마지막 몇 년 동안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하셨죠. 하지만 오래지 않아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맡기신 그 일을 저에게 맡겨주신 것 같아요. 저도 순종하는 것을 배웠으니 순종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강 - 나의 고향 한국
벤 신부님께 한국은 어떤 나라인지 궁금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전에 리즈사모님께서 오랜 시간 바닥에 앉아서 모임 하시는 것을 보고 좌식문화가 어렵지 않으신지 걱정했었는데 신부님 가족들은 한국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지도 궁금하네요.

저는 8살에 한국에 왔습니다. 서울에서, 또 태백에서 저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한국은 저에게 고향 같은 곳이에요. 저희 부부, 리즈와 저는 결혼하고 나서 78년부터 2년 동안 예수원에 함께 있었습니다. 우리 둘 다 한국을 사랑합니다. 한국 문화 어렵지 않습니다. 아들을 한국에서 낳았습니다. 아들에게도 한국이 고향이죠.

한국 사람에 관한 질문은 아주 어려운 질문이에요. 우리는 한국 사람 사랑합니다. 물론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죠. 하지만 한국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믿습니다. 한국교회가 연합한다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이루실 거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가 연합하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교회가 연합하는 것이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네 번째 강 - 나의 사랑 북한
북한에 대한 한국 교회의 시각이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대북지원 등을 통해 그들을 살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 정권 자체를 악한 것으로 보고 그 정권의 붕괴를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은 정권 붕괴를 위해서는 대북지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무엇이 옳다고 딱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곧 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제가 믿기로는 하나님께서 두 가지 시각 다 사용하실 것이라 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원하고 또 북한 정권을 압박하는 일도 또한 필요할 것입니다. 각 단테마다 각자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저는 한국교회 각 단체가 각자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이뤄진다고 봅니다.

각자 나름대로 북한에 대한 준비는 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필요한 준비가 너무 부족합니다. 북한의 현실을 바로 이해하지 않으면 오해가 더 쌓일 수 있습니다. 함께 연합하여 연구하고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다음 세대에게
증조 할아버지이신 R.A. 토레이는 20세기 세계적 부흥의 밀알이 되셨습니다. 또 만주의 한국 디아스포라들 가운데 부흥의 불씨가 되셨죠. 또 대천덕 신부님께서 한국 전쟁 이후 한민족의 부흥의 통로로 쓰이셨다고 믿습니다. 한국의 다음 세대를 위해 또 한국으로 보내심을 받으신 벤 신부님께서 한국의 다음 세대, 부흥의 세대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제 한 나라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습니다. 북한의 문을 열고 복음을 전하는 세대가 되면 좋겠습니다. 북한의 회복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북한 사람들은 선교사로서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무엇에도 막히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그 일이 일어나도록 한국의 교회가 연합하여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갈 때 부흥이 일어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신부님께서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예수님 몸 된 교회가 갈등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가 되길 기도합니다. 지도자가 겸손하길 기도합니다. 주님 앞에 회개하길 기도합니다. 형제 자매가 서로를 인정하고 돕는 이 나라가 되길 기도합니다. 꼭 그렇게 되길 기도합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대담정리 / 진희경(New Wine 객원기자 [ 200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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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공동체 예수원과 삼수령 네번째강 계획은 7∼8월 북한 선교를 준비하는 크리스천들을 대상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1기 노동학교’를 개최한다. 이번 노동학교에서는 북한을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 예수원의 삼수령 목장에서 노동을 하며 북한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된다. 예수원의 벤토레이 신부는 “노동을 통해 참가자들이 북한 노동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길을 예비하라’란 주제로 열리는 노동학교에는 김영길(한동대) 김진경(평양과기대) 총장,전강수(카톨릭대) 이선미(연세대) 교수,권요셉(예수원 회원)씨 등이 강사로 나선다(033-553-3395).


2006-06-2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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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태백시 적각동 산 62. 늘 코앞에 구름이 떠 있는 듯한 해발 1000m의 이곳 삼수령은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세 갈래 꼭지점이 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발원된 물은 동해와 낙동강,한강으로 흘러간다. 빗물이 고이면 동쪽과 서쪽,남쪽 세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이 사실을 맨 처음 발견해 삼수령이란 지명을 붙인 사람은 태백 예수원 설립자이자 2002년 세상을 떠난 대천덕(아처 토레이) 신부였다. 대 신부는 30년전 산림청으로부터 이곳 15만평을 하나님의 인도로 임차해 삼수령 목장을 세웠다. 그리고 동해 남해 서해에 이은 4번째 물줄기가 북쪽으로 향해 뻗어가야 한다는 원대한 비전을 품었다. 바로 ‘북한선교’였다.

대 신부를 비롯 예수원 식구들은 오랫동안 이를 위해 기도해 왔으나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 사역을 지난해부터 대 신부의 아들인 벤 토레이(56) 신부가 맡기로 결정,이곳에 삼수령훈련원과 청소년수련원을 세울 삼수령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미국에서 크리스천학교 이사장으로 교육사업에 몰두했던 저는 부친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북한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서 삶을 바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분명한 성령의 음성이자 사명으로 받아들였고 결국 한국에 남기로 했습니다”

벤 토레이 신부의 결단으로 토레이 가문은 한국과 4대에 걸친 인연을 맺게 됐다. 벤 토레이 신부의 증조부이자 성령론의 대가인 토레이 1세로부터 한국 의수족사업 창시자인 토레이 2세,3세인 대천덕 신부에 이어 벤 토레이 신부에 이르기까지 4대가 한국을 위해 사역하게 된 것이다.

안락한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부인 리즈 토레이(52) 여사와 지난해 10월 완전히 귀국,삼수령 목장의 허름한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는 토레이 신부는 “많은 분이 내게 예수원을 맡도록 요청했으나 이를 거절했는데 하나님이 보여주신 북한선교의 비전에는 결국 무릎을 꿇었다”며 “내가 무엇을 하겠다가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에 삼수령 프로젝트의 모든 것을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사역을 ‘넷째강 계획’이라고 부르는 그는 북한에 영적인 강물이 흐르도록 남한의 모든 크리스천들이 간절히 기도해줄 것을 당부했다.

“북한선교가 통일이 되면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라 여기는 분도 있는데 50년 이상 단절된 남북한은 언어와 문화,습관까지 상당히 다릅니다. 결국 철저히 연구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북한에 대해 가졌던 무지와 오해를 교정하고 효율적인 북한선교 방안이 모색돼야 합니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13년을 살았던 벤 토레이 신부는 한국말도 유창하게 잘한다. 문화시설이 거의 없어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주변 환경이 너무 아름다워 아내와 두번째 신혼을 맞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현재 예수원 원장인 어머니 현재인(86) 사모와 자주 만날 수 있는 것도 큰 기쁨이다.

“삼수령훈련원 설립은 남북한을 포함해 열방과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지체들로 하여금 연구와 훈련,노동과 기도,공동생활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도록 준비시키는 장소를 제공하자는 것입니다.이 꿈이 영글도록 기도해주십시오.”

김영길 한동대 총장 등 교계 인사들의 관심이 큰 힘이 된다는 벤 토레이 신부는 “필요를 하나님께만 구하고 사람에게는 알리지 않는 예수원의 믿음 재정 원칙을 여기에도 적용시킬 것”이라며 “오는 7월10일부터 8월18일까지 예수원 목장에서 열릴 북한선교 ‘네번째 강’ 강좌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무정 기자 kmj@kmib.co.kr [ 2006-04-21 1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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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준비하면서 북한에 대한 공부와 연구를 하고 있는 벤토레이 신부!!!
그의 집안은 증조부인 R.A. 토레이 1세가 처음 우리 나라에 온 후,
4대째 대를 이어 한국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1957년, 7살의 나이로 처음 한국에 온 그는 태백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불편하고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모험이라고 생각한 그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는데...
1964년 그의 아버지인 대천덕 신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직접 예수원 건물을 지었고 한겨울에 맨손으로 돌을 쌓으며 기도했다.
그리고 성령운동, 새로운 형태의 개신교 수도원 운동, 중보기도,
토지 정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한국 교회를 발전시켰는데...
서양의 가족 문화가 그러하듯 아들로서의 그의 삶은 아버지의 그것과는
똑같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단지 아버지의 사역일 뿐
자신의 사역은 다른 곳에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을 했었는데...
2002년 월드컵으로 뜨거운 열기 속에서 아버지의 부음 소식이 전해졌고
한국 들어와 있는 동안에 그에게 예수원 일을 뒤이으라고
여러 사람들이 권면했지만 그의 대답은 항상 No였다.
하지만 장례를 마치고 미국으로 가기 전날, 부모님의 친구분께서 해주신
창세기의 말씀은 그의 삶에 대한 태도를 극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는데...
에덴의 원류에서 강이 흘러 세상으로 흘러간다는 말씀은
그에게 예수원이 있는 목장의 이름이 삼수령이였다는
사실을 기억나게 하였고, 자연히 네 번째 강에 대한 묵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간 후 아내와 상의하면서 하나님께 계속 기도를 한 그는
2003년 1월 한국에 나와서 예수원 회원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네번째 강’ 프로젝트를 세웠는데...
한국 교회가 하나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라는 하나님의 말씀 아래
그 분이 인도하시는 방향을 따라 북한의 개방과 통일을 준비하고 있는
벤토레이 신부의 간증을 들어보자.



방송일 : 2005-11-09
방송링크주소  :  http://rainbowtv.cbs.co.kr/radio/view.asp?num=33596&program=tobe_new&pgm=&bt=&skey=broad_date&sval=2005-11-09&x=28&y=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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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환성속에 우리는 너무도 슬픈 소식을 접해야 했다.
강원도 산골에서 알려온 Reuben Archer Torrey(루벤 아처토레이) 3세, 우리이름 대천덕신부님의 부음(訃音)이였다. 영성의 사람, 예수원의 아버지로 일컫어 지는 그는 한국기독계의 큰 별이셨다.
그로부터 몇 넌이 흐른 뒤, 며칠전 용산의 어떤 게스트하우스(선교사 쉼터)에서 그 분의 아들, 또 한분의 토레이 신부를 만날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하나님의 강권에 의해 또 다른 한국사랑의 길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땅에 대한 한 외국인의 깊은 사랑은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대를 이어가며 아름다운 족적(足跡)을 남기고 있었다.

조금 시선을 돌리면 북핵문제로 요즘 세상이 시끄럽낟. 그 시끄러움을 단순한 핵전쟁의 공포에 기이한 소동이 아니라 북한을 향한 복음의 문이 열리기 위한 산통(産痛)으로 보는 이들이 믾다. 벤 토레이 신부도 그 중의 한사람이다. 한 벽안(碧眼)의 신부(神父)로부터 우리민족에게 품으시는 하나님의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 갓피플미디어 편집부 -


오래전 기억에 남는 영화 가운데 아버지의 이름으로라는 영화가 있었다.
아일랜드 사태로 시끄럽던 영국을 배경으로 혈기에 넘치는 이들의 험난한 시대상황 속에서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기까지의 아들의 방황과 뼈아픈 여정을 그렸었다. 대천덕 신부와 벤 토레이 신부와의 관계를 비교할 수 없겠으나 아버지의 아들로서 피할 수 없는 인생유전(人生流轉)의 모습을 떠올리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 예수원의 발자취를 더듬다 ]

벤 토레이 신부는 대천덕(루벤 아처 토레이 3세) 신부님의 장남으로 7살 때 (1957년) 한국으로 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사역을 지켜보았었다. 당시는 전쟁이 끝나고 혼란과 빈곤으로 가득한 나라에 불쌍한 민중만이 눈에 차오는 그런 시기였다. 대천덕 신부님은 당시 오류동에 있던 성공회 신학교(지금 '성공회대학')에서 사역을 하시며 이 민족의 미래를 위한 구상을 하셨던 듯 하다. 벤 토레이 신부님의 표현처럼, 아버님은 프로패셔널한 크리스천이 아니라 보통 크리스천을 위한 사역에 뜻을 정하고 계셨다. 이런 생각을 실천에 옮기려 64년 토레이 일가는 강원도의 깊은 산골인 황지(지금의 태백시)로 들어가게 된다.

" 당시 아버님과 몇몇 분들이 예수원(Jesus Abbey) 건물들을 직접 손으로 만들게 되었는데... 그해 12월 22일, 우리는 간신히 만들어진 집에 입주하게 되었어요. 그때의 감사와 감격은 잊을 수 없지요 ! "

유난히 추운 지역인 강원도 태백의 산골에서 한겨울이 다할 때까지 집을 손수 지으며 맨손으로 돌 하나씩 쌓으며 기도한 개척자들의 기도가 지금까지 예수원을 지키는 튼튼한 신앙의 기초가 되었음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서양의 가족 문화가 그러하듯 아들로서의 벤 토레이의 삶은 아버지의 그것과는 똑같아야할 필요는 없었다.

" 그때 까지도 저는 아버지의 삶과 저의 삶이 연관이 있을 것이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아버님의 장례로 한국에 들어와 잠시 있는 동안에도 예수원과 관련한 일에 아버지를 뒤이어 제가 관여하는 것을 여러분이 권면하셨지만 저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모든 제안에 대답은 항상 No였죠.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충분히 있었지만 저는 저 나름대로 미국에서 제가 하는 일이 있었거든요 "

그것은 단지 아버지의 사역일뿐 자신의 사역은 다른곳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을 막연하게 했었다고 한다. 20년간 앤더슨 컨설팅 컨설턴트, 크리스천 스쿨 창립자겸 교장 등... 그의 경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 생각을 할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삼수령 프로젝트는 ... ]

그러던 중에 집을 찾아온 어떤 분의 입을 통해 다가온 창세기의 말씀은 그의 삶에 대한 태도를 극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에덴의 원류에서 강이 흘러 세상으로 흘러간다는 말씀 ( " 강이 에던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 창 2:10)은 그에게 예수원이 있는 목장의 이름이 삼수령(三水嶺)이었다는 사실을 기억나게 하였고, 자연히 네번째강 (The Rourth River)에 대한 묵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묵상중에 깨닫게 된 것은 그 네번째 강은 북한으로 흘러가야 할 생수의 강이었다는 사실이다.

" 그 이후로부터 이상한 느낌들이 저를 이끄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북쪽으로 흘러가야 할 네번째 강에 대한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이야기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그러고 나서 미국의 생활이 저절로 하나씩 정리가 되기 시작했어요. 계속 기도중에 북한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르고, 거리는 지나면서 가스펠 노래 소리가 들려도 머릿속에는 북한이 떠오르며 눈물을 흘렸어요. 그러다 마침내 북한에 대한 강한 그 어떤 느낌을 받게 되었는데... 내가 깨달은 것은 북한을 향한 그 마음을 " 하나님이 주신 것" 이었다라는 사실입니다. " 얼마 안으로 북한의 문이 열릴 것이다. 지금 그것을 준비해야한다 ! " 그것을 준비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예수원으로 하여금 그동안 북한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공동체 생활을 통해 삶의 모습들을 다듬어 오셨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

성공회 신분의 아들이며 현재 미국의 동방교회 신부인 벤토레이씨는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고백을 이렇게 담담하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겐 이런 비전은 너무나도 큰 부담이었다. 사실 북한에 대하여 그동안 관심을 가져본 일도 별로 없었고 지식이나 경험도 없는데 막상 응답에 따라 무언가 일을 하려고 하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 돈 등...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자연히 기도에 매달리는 수 밖에 없었고... 치열하게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 들은 음성은 전혀 뜻밖이었다고 했다.

" 정말 간절히 기도하던 중이었어요. 크던 작던 일을 제대로 하려면 돈도 많이 필요하고 사람도 필요한데.. 그것을 구하려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제 머릿속에 뚜렷하게 들려온 음성은..
" 내게 돈을 구하지 마라 ! " " 너는 나의 일꾼이니까 내가 필요한 것을 주겠다 " 였어요 !
마치 어린이가 필요한것을 아버지가 알아서 주듯이.. 말이죠. 그래서 저는 그럼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라고 물었쬬. 그때 들은 대답은  " 한국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 기도해라 " 였어요. 차라리 수억불을 위해 기도하는게 쉽지.. ^^ 한국교회를 하나되게 만든다는것 .. 처음에는 불가능하게 여겨졌었어요. 그러나 그 하나된다는것이 한 교단이 되는것이 아니라 한 마음으로 한 가지 일을 하는것을 의마할 때 소망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신앙인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때 그의 뜻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는 일다. 벤 토레이 신부의 경우 작금(昨今)의 변화의 중심에 돌아가신 아버님의 뜻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듣게 되었다고 했다. 대천덕 신부님은 운명하시기 전 미국 여행길에 벤 신부님의 동생(차남)과 동행을 했었는데, 그때 신부님은 동생에게 예수원이 장차 북한을 위해 무언가를 할 일을 준비해야 하겠다는 구상을 이야기하셨다는 사실을 나중에 동생을 통해 알게 되었다. 대천덕 신부님이 그 이야기를 동생에게 하고 당분간 함구하라고 하신 이유는 아마도 주위의 섣부른 상상을 조심하고 대천덕 신부 특유의 조용한 추진력으로 그일을 도모하시려던 뜻이었다.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도 대천덕 신부의 한국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그대로 아들에게 전해져 그의 끔이 현실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섭리가 신기하기만하다.


[ '예수원'과 '삼수령 프로젝트' 는 ? ... ]

대천덕 신부님이 세우신 예수원은 한국 기독교계에 영성에 대한 바른 깨우침을 주었고 지울 수 없는 깊은 족적을 남긴 곳이다. 그러나 예수원에 대한 사역의 연고성을 굳이 고사하면서 삼수령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벤 토레이 신부는 나름대로 두 사역단체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 예수원과 삼수령프로젝트 이 두가지 단체는 별도의 몸체이지만 같은 목적(한국의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입니다. 미국 속담에 "Stand on the Shoukder of Giant(거인의 어깨위에서 더 멀리본다)"는 속담이 있어요. 예수원이 그동안 이룩해 온 사역의 결정체 위에서 삼수령 프로젝트가 시작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동안 예수원의 사역이 있었기에 이 일도 가능한 일이였다는 생각을 합니다.
" 노력하는 것은 기도이고, 기도는 노동하는 정신.." , " 공동체 생활 " , " 끊임없는 중보기도... "
예수원의 이 모든 유산이 북한의 복음전파를 위한 준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도 이 일은 너무 큰 일이 입니다. 모두의 마음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 세계관이 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 마음으로 성령님이 하시는 일을 지켜보아야 합니다.

저는 이 일 시작하기 전에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이 일, 생각해보면 우리가 일절 못하는 일이예요. 그러나 큰 비전을 떠 올릴때 ... 그분의 손이 저를 붙잡는 것을 느낍니다. 그때 제 기도는 늘 '' 왜 저입니다.."이죠.
그러나 나중에 보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그것은 그분의 일이지 제가 하는 일이 아니란 것을 나중에 알게 되죠 ."

언제나 한 인간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늘 섬세하고 놀라우리만큼 강력하다. 대천덕 신부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만족에게 바른 성령의 모습에 대하여 눈을 뜨게하신 주님은 이제 예수원을 통해 준비하신 바른 성도의 삶에 대한 훈련의 결과들이 어느 곳에 쓰일 것인지에 대한 비밀스런 계획들을 우리 앞에 조금씩 보여주고 계신다.  " 삼수령 프로젝트 "는 기도중에 그분을 통해 직접 받은 소명이기에 예수원 사역의 동일 연장선에서가 아니라 구별되어 추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힘주어 하는 벤토레이 신부는 아버님이 이륙하신 예수원의 후광을 힘입지 않고 오직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겠다는 그 만의 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벤 신부님은 우리와 너무 이질적인 문화가운데 살아온 그들에게 막연히 감상적인 통일에 대한 상상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지적을 빼놓지 않는다. " 북한의 바른 이해없이 무작정 복음만을 전하려 할때 실패할 수 밖에 없고, 오히려 상황은 더 나빠질 수 도 있다."는 경고를 잊지않는 벽안의 한 중년의 외국인의 말 앞에 통일에 대한 지금 우리의 생각을 되돌아 보게 된다.

" 우리의 소원은 통일..." 어릴 적에는 이렇게 노래만 부르면 통일이 될 줄 알았었다. 그러나 한반도의 통일이 이렇게 노래만으로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귀찮은 의무(병역)를 피하기위해 국적도 내던지는 한국인이 줄을 서는 이시대에 정작 미국 국적의 벤토레이 신부는 올 10월에는 아예 가족을 모두 한국으로 데려와 통일을 준비하기위한 일에 매진할 계획을 이야기한다.

지체없이 사람들을 키워야하겠고, 정책을 개발하고, 끊임없이 이를 위한 연구가 필요하기에 오는 8월부터는 북한학교를 예수원에서 열 계획이란다. 수십년째 객으로 이땅을 회복하는데 일생을 바친 벽안의 가족들이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이 때, 정작 이 나라의 주인인 우리는 무엇에 관심을 갖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는지...? 이 시대가 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참다운 영성이란 어떤 모습일지.. ? 나도 오늘은 기도의 골방을 찾아 그 질문에 답을 구하고 싶다.



| 삼수령 프로젝트 |
예수원 목장이 있는 삼수령에 연수원을 세워 장차 통일을 대비한 일꾼을 양성하겠다는 야심찬 비전의 프로젝트임. 벤토레이 신부님이 대표로 20여명의 이사진이 구성되어 있음

| The Rourth River Project |
일명 네번째 강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북한을 향한 통일을 대비한 정책적 구상과 전략적 연구를 하려는 모임

| 예수원 ( Jesus Abbey ) |
대천덕 신부님이 세우신 국내 최초의 '수도원'으로 강원도 태백에 있음. 한국의 '영성운동'의 메카로 알려짐

| 신부(Priest)라는 명칭에 대하여 |
대천덕 신부님이 속해있는 성공회 교회는 영국에서 시작된 교파로서 성직자를 신부로 지칭함. 카톨릭의 용어는 동일하나 성공회 교회는 카톨릭적인 예전보다 개신교의 개혁교회 철학에 더욱 가깝다.

 

** 원문바로보기 주소 - http://www.godpeople.com/page/thisweek/20050530.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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